김의진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수현이와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내 연구실에서 상담을 위해 이뤄졌다. 수현이는 흡사 동서양의 트기 같이 생긴 육감적인 몸매를 갖고 있었다. 얼굴도 약간 가무잡잡한 것이 아주 야성적이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특히 불룩 튀어나오고 아래로 처지지 않은 커다란 엉덩이가 섹시했다. (중략) 수현이는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나를 진심으로 흠모하고 존경하는 듯했다. 그래서 내 방에 자주 드나들며 대화를 많이 나누곤 했는데, 나는 그녀의 소탈하고 솔직한 성격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여우같이 야하게 생긴 얼굴은 아니었으므로, 밖에 나가서 맥주를 같이 마시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스스로를 ‘솔직한 사람’이라고 했던 故 마광수 연세대 교수. 10여 년 전, 노골적인 책 《사랑의 학교》를 출간했다. 주인공 ‘마광수 교수’가 여학생 5명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을 담은 그 책이 줬던 깊은 충격은 아주 오래 지속됐다.

마 교수는 “문학은 ‘자신의 상상’을 소설로 쓰는 ‘배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니니 문제없다 한다면 그것은 논리가 될 수 없다. 특히 ‘비뚤어진 여성관’과 ‘성적 대상화’는 어떤 식으로도 ‘파렴치’한 소재일 뿐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욕망에 대한 ‘자유주의적 문학’이 아닌 ‘야설’에 가깝다고 비판받았던 이유다.

최근 연극·예술계 출신 교수가 저지른 만행이 전문대학, 일반대학 할 것 없이 곳곳에서 폭로되고 있다. 전문대학 팀장이 학생홍보대사를 희롱한 일도 있다. 후배들에게 성폭행 상황이나 성행위를 강제로 묘사하게 한 예술계 전문대학의 학내 문화도 알려졌다. 대학은 해당 교수, 학내 문화가 잘못됐다고 인정하며,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가해자에 대해 작게는 강의 배제, 크게는 직위해제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마광수 교수’는 과연 당당한가? “자연스러운 만남이 내 연구실에서 상담”으로 이뤄질 때, ‘수현이’가 “나를 진심으로 흠모하고 존경”했다 해도, 교수가 “밖에 나가서 맥주를 같이 마시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해서, 수현이가 자신도 모르게 ‘성(性)적 대상’으로서 “섹시하다” “여우같이 야하게 생긴 얼굴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은 사실이 달라지는가?

바꿔 말해, 강제 신체 접촉이나 성희롱하지 않았고, 제자가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면, ‘마광수 교수’의 마음속 ‘왜곡된 시선’과 ‘성(性)적 발언’은 아무런 비난을 받을 수 없는 일인가?

‘가벼운 성적 농담은 문제없지, 그런데 가해 교수는 변태’라고 하는 것은 가해 교수와 내 안의 ‘마광수 교수’를 분리하고, 가해 교수만을 도려내기 위한 억지주장이다. 강제 신체 접촉이 있었든 없었든, 성적 농담이 가볍든 무겁든, 말을 실제로 뱉었든 아니든, ‘마광수 교수’나 가해 교수 모두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반성과 재발 방지 노력은 이러한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이 익숙한 잘못들을 올바로 바로잡는, 변화된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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