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부천대학교 교수

대학가의 졸업시즌이 지나갔다. 꽃다발을 든 채 검정색 졸업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 몇 십 년 전의 졸업식 모습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은 없는 듯하다. 졸업하는 당사자들의 떨리는 심정과 같이 축하해주는 주위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하다. 그런데 예전 대학에서 주는 졸업장과 지금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많은 대학에서 ‘직무능력인증서’를 졸업장과 함께 주고 있다. 아마도 직무능력표준에 따라 교육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의 그간의 노력을 보상해주고, 취업의 세계로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능력을 인정받으라는 대학 측의 배려일 것이다.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 인증서 안에는 당사자가 앞으로 전공 분야로 취업을 하게되면 맡게 될 직무와 연관된 구체적인 ‘능력’이 표시돼 있다.

사실 이 같은 대학 ‘인증서’의 시작은 직무능력표준 기반의 교육과정이 실시된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유명대학들을 중심으로 자교출신 학생들 중 외국어능력이나 전산관련 자격증 취득자의 우수성을 기업에 어필하기 위해 직무능력인증제를 실시했으나 대다수 기업들이 신입사원 선발 시 자체평가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들 인증서가 무시됐던 것이다. 그런데 3~4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의 교육과정을 대학에서 도입한 후 다시 인증제가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20년 전의 인증서가 학생 개인의 능력여하에 따라 수여됐다면 주로 전문대학에서 실시 중인 현재의 인증서 한장에는 졸업생 당사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담겨있다. 어려운 대학재정 여건하에서도 실습환경과 기자재를 마련해 직무능력표준에 따른 교육을 실시하려는 대학본부, 자신이 강의해온 강의노트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표준에 따라 강의안과 교수법을 바꾼 대학교수, 새로운 행정시스템을 만들고 적용한 대학직원들이 있다.

이처럼 과거의 인증서 개념에서 발전해 좀 더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되도록 작성, 수여하는 대학별 인증서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인증서 자체의 검증된 객관성과 이를 인정해주는 사회(기업)의 인식변화일 것이다. 국가 기관도 아닌 대학이 개별적으로 수여하는 인증서의 객관성에 대한 증명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이 객관성의 담보에는 산업별, 직군별 ‘국가직무능력표준’이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이것이다. 그동안 1조원의 예산이 이 표준안 개발과 직업교육을 위한 체계에 투자됐다. 여기엔 돈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대학관계자들의 땀과 열정이 포함돼 있다. 특히 ‘현장과 괴리된 직업교육’이라는 일방적인 말에 속앓이만 해왔던 전문대학은 스스로의 반성과 자구책으로 이를 대학교육과정에 받아들였다. 이뿐만 아니다. 작년 10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에서 실시한, 전국 1674명의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보면 대학과 협약관계를 맺고 있는 전국 수만개의 기업이 이 직무능력표준을 모르고 있었으며, 오히려 대학교수들을 통해 알게 됐다고 응답했다. 강의하기에도 바쁜 교수가 정부를 대신한 ‘정책홍보자’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소망은 제자들이 사회에서 좀 더 능력을 인정받고,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취업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언제까지 교육 이외의 이런 일들을 대학이 떠 안아야하는 것일까. 졸업장과 함께 주어지는 작금의 ‘인증서’를 보며 10년 전, 20년 전처럼 사회와 기업의 무관심 속에 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모르는 인증서가 그 조짐이다.

직업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후속정책이 필요하다. ‘교육’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동전을 뒤집듯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조건 전 정권의 기조를 이어받으라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구분할 줄 아는 ‘어른’들이 있지 않은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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