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훈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획처 선임행정원

 

몇 년 전 스탠퍼드대 디스쿨(d-school)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디스쿨은 ‘HASSO PLATTNER Institute of Design at Stanford’의 애칭(약칭)인데, Empathize(공감)→Define(문제 정의)→Ideate(아이디어 도출)→Prototype(프로토타입 제작)→Test(테스트)의 과정을 거치는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 다양한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산실이다. 디스쿨에는 전공을 불문하고 등록할 수 있는데, 문제창조와 문제해결을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서로 다른 관점과 다른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단적 협력(radical collaboration)’이 이뤄지는 곳은 어떤 모습일지 출발 전부터 무척 기대가 됐다.

직접 방문해보니 우선 높은 천장이 눈에 띄었고(높은 천장은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칸막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하며 다양한 그룹 활동이 가능할듯 했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보드에는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한 흔적들과 빼곡하게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했고, 제품 제작이 가능한 테이블과 3D프린터 같은 각종 기자재도 마련돼 있었다. 한쪽에서는 열띤 전문가 강연이 열리고 있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구성원들 간에 소통과 협력을 활발히 하면서, 선배들의 베스트 프랙티스도 학습하고, 시제품도 바로 만들어볼 수 있도록 상당히 똑똑하게 공간이 구성돼 있었다.

우리 대학들에도 속속 창작 공간들이 설치되고 있다. 디스쿨처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무한한 창의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한 공간이다. 물론 이러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도 적지 않다. 스티브 잡스가 창고(garage)에서 친구들과 꿈을 키웠다고 해서 너도나도 창고 형태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코미디라는 비난도 들린다.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까? 창의성과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platform), 테스트베드(test bed), 스캐폴딩(scaffolding)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라는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의 말도 원용해볼 만하다. 창작이라는 고유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만든 전용 공간을 기존의 다른 공간이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사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개선해 나간다면 분명 다채로운 창작 활동을 수행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창업과 창직을 위한 산뜻한 아이템은 물론이고, 획기적인 작품이 튀어나와 크나큰 기쁨을 선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표현처럼 공간은 ‘침묵의 언어(silent language)’다. 공간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가 창의성과 협업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구글ㆍ애플ㆍ페이스북의 사옥에서 그들의 ‘혁신 DNA’를 읽어내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대학의 공간에는 그 대학이 인재양성에 대해 갖는 철학과 실천이 담겨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시대를 맞아 무한경쟁에 돌입한 대학들은 언필칭 “우리 대학은 이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한다”고 외친다.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으려면, 분명 각 대학의 사정에 맞게 이전과는 다른 가시적인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대학은 여러 부문이 연결된 거대한 시스템이다. 몇몇 요소만 뜯어고친다고 발전하지 않는다. 교육, 연구, 재정, 국제화, 산학협력 등의 혁신만큼이나 공간의 혁신에 있어서도 좋은 담론과 성과가 나오기를 기원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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