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성신여대 교수( IT학부)

최근 여러 사람들이 하도 많이 언급해서 다소 식상해지긴 했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여러 분야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필자의 전공이 컴퓨터과학인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의 기반기술인 심층학습(Deep Learning) 분야에서는 과거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문제의 기계적 처리를 보여주는 결과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어 때로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다. 과연 궁극적으로 기계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만의 분야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전망은 전체 일자리의 거의 모두, 낮춰 잡아도 80% 이상이 기계에 의해 대치될 것이라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다가올 미래는 기존의 지식과 관념을 척도로 삼기에는 너무나 불투명하다. 어떤 석학이라도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은 무엇일까? 비록 4차 산업혁명의 공통된 정의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으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이다. 이것은 OECD 국가들에서 고등교육재정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중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그에 따른 선택과 집중도 어려운 만큼, 다양한 학문을 포괄한 고등교육기관의 전반적인 수준을 제고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하자는 전략은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하겠다.

이제 우리나라의 대학을 생각해보자. 먼저 몇 가지 대중의 오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대학의 수가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보다도 적다. 그러나 인구 대비 대학생의 수는 미국보다 많고, 일본보다는 2배 이상 훨씬 많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대학별 평균 학생 수가 많기 때문이다. 자원이 제한된 한 대학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치니 교육환경이 좋을 턱이 없다. 필자는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의 수만 대폭 줄이면 교육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경쟁력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별 평균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발상을 전환하면 교육환경의 개선과 그에 따른 대학 경쟁력 제고, 미래를 대비하는 국가전략의 호기(好機)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단, 그런 전화위복의 전제는 국가 고등교육재정 대폭 확충이다.

우리나라 대중에 널리 퍼져 있는 또 다른 오해는 사립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립대학이라 하더라도, 대학의 존재 자체가 지역에 미치는 혜택과 대학교육의 결과물 등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공동으로 누린다. 공무원이든 사기업 직원이든, 그들이 갖춘 전문지식과 소양의 큰 부분은 대학까지의 교육에서 획득한 것이다. 즉, 초중등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사립대학을 포함한 모든 고등교육 또한 공교육이어야 옳다. 실제로 OECD 교육보고서에서는 국공립과 사립의 구별 없이 고등교육에 투입된 재정을 공교육비로 분류하며, 이 중 국가가 부담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예컨대 핀란드는 공교육비 중 국가가 94%를 부담한다. OECD 평균이 70% 정도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40% 정도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가 고등교육의 공적책임에 소홀한 것이다.

필자가 재고를 요청하는 마지막 대중적 편견은 경쟁지상주의(meritocracy)와 그에 따른 대학서열화를 당연하거나 심지어 좋은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학서열화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기형적 서열화는 대학의 진짜 경쟁력을 오히려 갉아먹는 폐습이다. 대학 입학할 때의 점수가 평생을 결정하는데, 누가 이후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할 동기가 있겠는가? 서열상 1위 대학은 현재에 안주하고, 2위 이하 대학은 영원히 열패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리곤 외국 명문대학 앞에서 국내 서열 1위는 고개를 숙인다. 현재의 대학서열화는 어느 모로 보나 백해무익이다.

지면상 제약 때문에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수렴하도록 하자. 도저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세상에 대한 준비, 지역경제와 문화 등의 중요한 축이면서 우리나라 공교육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빈약한 재정, 대학의 진정한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극단적 대학서열화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만병통치약은 없겠으나, 이미 현 정부가 출범하기 전 문재인 대선후보 공약사항에 포함돼 있던 ‘공영형 사립대학’과 국공립대학네트워크가 이러한 문제들을 두루 고려하는 매우 유효한 정책이라고 사료된다. 물론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그 전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도록 해당 대학의 거버넌스와 운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며 시간여유가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고등교육 경쟁력 제고의 일환으로 공영형 사립대학 정책의 추진에 하루빨리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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