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연구원

최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대학원 신입생 경쟁률이 0.97 대 1을 기록, 초유의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화돼 발생된 사태이며, 향후 산업계의 이공계 수급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 사회적으로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선호도는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취직률이 좋은 이공계 분야의 선호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해당 보도 내용은 아이러니하다. 

실제 산업기술인력수급동향 통계자료를 살펴봐도 그렇다. 이공계 분야 석·박사와 대기업, 중견기업 부족인원은 3000여 명에서 2000여 명으로 감소했다. 이공계 학생들의 의·치·약학전문대학원으로의 진학 또한 약 15년 전부터 지속돼온 일이기에 본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일까?

2015년 기준 매년 해외로 나가는 이공계 학부생은 2만4708명, 대학원생은 1만462명에 이른다. 박사 취득 후 해외로 나가는 인력도 2013년 한 해에만 8931명에 달했다. 이러한 이공계 인력의 해외 진출은 지난 10여 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이공계 기피 심화와 이공계 인력 수급 어려움이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로 이동하는 이공계 전공자는 늘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2016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분야 연구원 수는 약 40만 명으로, 석‧박사 인력은 각각 약 13만 명과 약 9만 명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에서 22만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상근상당 연구자(FTE; Full Time Employee)의 비율이 78%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이공계 석‧박사 인력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는 이보다 더 적다.

반면 배출되는 자연‧공학계열 석‧박사 인력은 매년 증가해 2017년 한 해에만 석사 2만780명, 박사 6177명에 달한다. 이는 2000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산술적으로 석사 인력은 6년, 박사 인력은 15년이면 새로이 배출되는 인력으로 현존하는 이공계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사회로 배출되는 모든 이공계 석‧박사 인력이 모두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이공계 석‧박사 인력의 공급 과잉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경제적‧산업적 수준이 점차 고도화됨에 따라 산업계를 중심으로 이공계 석‧박사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과학기술인재기본계획 수립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공계 인력 양성 지원사업을 통해 이공계 석‧박사 인력 양성을 확대했다. 제3차 과학기술인재기본계획(2016~2020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이공계 인력 양성에 대학 및 대학원으로 투자되는 국민의 세금만 1조8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는 수많은 비정규직 석‧박사 인력 양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공계 석‧박사 인력의 양적인 증가는 수요를 넘어서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그 결과 20대 청춘을 학업과 연구에 전념한 많은 수의 이공계 석‧박사 인력은 연봉 3000만원 미만의 비정규직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계나 학계에 자리를 잡은 상당수 인력들 또한 공급과잉으로 인해 적절한 대우를 못 받고 있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국가별 경쟁력 지수(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의 ‘연구자‧과학자가 국가에 매력을 느끼는 정도’에서 한국이 61개국 중 34위로 굉장히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매년 해외로 나가는 이공계 인력이 1만8360명(2013년 기준)에 달한다. 이공계 인력의 부족함을 외치는 사회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최고급 박사 인력 8000여 명이 매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중 연구개발 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연구개발에 가장 몰입할 수 있는 박사 후 연구원들의 해외 이동은 특히나 뼈아프다. 

해외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의 경우, 이들을 해당 기관의 핵심 경쟁력이라 생각하고 대우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원생의 연장선 정도로만 인식하고 제대로 된 처우를 제공해주지 못해 애써 힘들게 키운 많은 수의 우수한 박사 인력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나간 우수 인재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숫자는 나간 인력의 4분의 1 수준인 28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회에서 우려하는 이공계 기피 현상과 국내 이공계 인력 부족의 원인은 우리 사회에 이공계 석‧박사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제공해주는 적절한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음에 있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는 이공계 필요 인원(97만 명)이 공급 가능 인력(75만 명)보다 부족하다는 고용노동부의 ‘대학 전공별 인력 수급 전망 예측’을 근거로 최근 인력난 대비 정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부디 종합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이공계 인력 현황 및 사회 현황을 제대로 분석·파악해, 막대한 세금을 투자해 길러낸 우수한 이공계 인력들이 원치 않게 이 땅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이공계 인력 수급 정책이 만들어지기를 강력히 염원해본다.

* '미리내'는 은하수를 일컫는 순우리말입니다.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는 과학기술인 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와 <한국대학신문>은 공동으로 ESC 회원 과학기술인들의 연재 기고를 진행합니다. 과학기술계의 다양한 목소리와 연구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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