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본지 논설위원 / 경일대 교수,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평가단장

3월은 망국의 아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3·1절로 시작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울려퍼진 애국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맞은 올 3월의 세계는 마치 열강이 국익 다투기에 골몰하던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 무역전쟁의 먹구름에 덮여 있다. 우리의 뼈저린 과거를 돌아보며, 국가의 앞날이 달린 대학의 현주소를 거듭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미국의 포함외교에 굴복해 불평등 화친조약(1854년)의 굴욕을 맛보았던 일본은 20년이 지나 조선을 운요호로 위협하며 강화도조약(1876년)을 맺는다. 강화도조약 체결 20년 후의 조선은 어땠는가. 1896년 아관으로 파천한 고종이 이듬해 환궁해 대한제국의 출발을 선언하지만, 이미 접어든 몰락의 길을 되돌리기는 불가능했다. 똑같이 타의로 쇄국의 빗장을 열었던 조선과 일본의 차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일본이 때맞춰 개혁을 감행한 데 반해 조선은 때를 놓쳤다는 점이다. 일제가 강점기 내내 자행했던 잔혹한 학살, 야만의 고문과 수탈은 우리가 근대화의 길목에서 자기혁신의 때를 놓친 혹독한 대가였다.

적폐청산을 공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많은 국민들은 부정비리와 비민주적 전횡이 야기한 분규로 만신창이가 된 대학이 이제는 달라지리라 기대했다.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감당하고 있는 사립대학에서 터져나오는 각종 비리와 법정다툼 소식에 낙망해 있던 국민들로서는 당연한 기대였을 것이다. 대학의 진정한 변혁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교육개혁을 위한 국가교육회의나 사학비리 척결을 위한 사학혁신추진단 등이 결성될 때까지의 느린 행보에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인내가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비리의 주역들은 건재하고 적폐의 구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시기와 방법에 대한 교육부 책임자의 복안을 알 수는 없지만, 때를 놓치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우려한다. 현 정부에 유독 교육분야의 지지율이 현격히 낮은 것이 상황의 심각성을 입증하고 있다. 경종의 촛불이 등장하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것이다.

지난달 외신이 “기술적인 역량과 유연한 문화적 힘을 펼쳐냈다” “전 세계의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는 등으로 극찬한 올림픽 개·폐막식을 총감독한 송승환 대표는 한국 국민의 역량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한편 대학에 따끔한 화두 하나를 던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대학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한 것”을 태어나서 가장 잘한 결정 세 가지 중 하나로 꼽았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있는 분에게는 크게 와닿는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4차 산업시대의 활로를 모색하는 대학이라면 송 대표가 개·폐막식에서 선보인 ‘기술과 문화의 융합’ ‘다른 분야와의 협력’도 커다란 자극이 됐을 것이다. 그의 의도가 어떠했든 대학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이 ‘대학 다닌 것’을 생애의 가장 잘한 일로 꼽는 대학 만들기는 대학혁신으로 바라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빨리 권한에 따른 책임이 있는 대학 민주화를 구현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대학이라면 ‘다닐 만한 대학’이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최근 논의가 뜨거운 ‘사립대의 총장직선제’ 역시 대학 민주화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평창에서 봤던 우리의 가능성을 대학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