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 전문성 부족‧유사과정 존재 이유로 비판

무학과 아닌 기초과정 2년+전공선택 2년+진로+심화실험
학생들 고시준비‧인기전공 쏠림으로 폐지된 경우도 있어
전문가들 “의식‧제도 함께 가야…수요자 외면하면 실패”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내년 초 개설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융합기초학부가 일반대학의 자율전공제와 유사한 교양+전공 ‘2+2’ 제도를 채택할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전공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라지만,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이 비판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유사한 교육과정이 이미 존재하는데다, 전공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기에도 부족하고 진로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본지가 KAIST 융합기초학부 설립추진단이 지난달 9일 심의한 추진경과 보고서를 입수해 검토한 결과 ‘4년 무학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2년의 ‘융합심화’ 과정이 추가됐다. 2학년은 ‘융합기초’ 과목 19학점을 수강한다. KAIST 학생들은 모두 단일계열로 입학해 기초과학 과목을 배우기 때문에 교양 2년, 전공 2년의 형태다.

융합기초 교과목은 △현대물리(양자역학) △유기‧생화학 △분자생물학 △경제‧경영 △응용 수리모델링 △고급프로그래밍(인공지능)이다. 3, 4학년부터는 2016년에 시행된 ‘포트랙(Four Track)’ 제도를 따른다. 자유융합을 선택해 두 개 이상 학과에서 원하는 전공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하거나, 심화전공, 복수전공, 부전공을 택해 학과에서 지정하는 과목을 수강토록 한다. 여기에 팀을 구성해 기업, 연구소 현장에서 연구과제를 기획하는 ‘심화실험’과 진로설계 세미나가 포함됐다.

▲ 본지가 입수한 KAIST 융합기초학부 설립추진단의 지난달 9일 추진경과 보고서 일부.  3학년 진학시 물리학과를 복수전공하는 융합기초학부 학생이 듣게 될 학사과정 예시. 1학년 자연과학 기초교양, 2학년 융합기초 그리고 3, 4학년의 전공과정으로 구성된 '2+2' 체제다.

융합기초학부 설립추진단장 김종득 명예교수는 KAIST가 이미 시행해 온 대학원 협업 연구, 융합전공 수강 등 융‧복합을 위해서는 다른 전공의 기초지식을 이해시키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융합기초학부는 전문가를 기르는 것이 아닌 ‘지대넓얕(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교양을 배운 뒤 기존 학과의 전공을 택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과거 대학들의 교양 1년, 전공 3년 자율전공학부와 닮아 있다. 1995년 한동대가 처음 도입한 자율전공제는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로 남는 구 법과대학 정원을 이용해 시도하면서 대학가 전체로 확산됐다. 그러나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소위 ‘인기전공’에 학생들이 몰리거나 ‘고시반’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를 이유로 2010년 중앙대, 2011년 성균관대, 2013년 연세대‧한국외대가 자율전공을 폐지했다. 중앙대 전 교무처장 김창일 교수(전자전기공학)는 “(자율전공이)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기 전공이 곧 진로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너무 고착화돼 있다”고 평가했다. 교육 수용자인 학생들이 외면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고 너무 앞서나갔다는 설명이다.

KAIST 구성원들도 학교의 정책을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학 측이 기존 자율전공과의 차이점으로 꼽는 ‘융합기초’ 5과목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분량이 많고 어려워 한 학기~1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을 자체 교육과정을 개발해 한 학기 만에 가르친다는 계획을 두고 전문성 약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KAIST 교수는 “소통도 중요하지만 자기 전문성이 첫째다. 말이 좋아 융합이지, 실제로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유사한 제도가 있다는 것도 도마에 오른다. 융합인재를 양성한다면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포트랙’ 제도를 도입한지 2년 만에 비슷한 제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재석 KAIST 총학생회장은 이를 이유로 “융합기초학부를 선택하게 될 신입생들이 무엇을 배울지 알려주고, 학교를 졸업할 때 어떤 지식을 갖고 나오게 될 지 이해시켜야 하는데, 여전히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KAIST 정문.

김종득 추진단장은 “융합기초학부를 자율전공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른 대학은 인기학과로 쏠렸지만 우리는 대학원에서 융합연구를 할 학생을 기를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의 DGIST와 기존 ‘포트랙’의 결과가 아직 없어 인재상이 추상적이라는 지적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불만을 갖는 것도 사실은 듣기 싫은 과목을 이수하라고 해서다. 융합기초는 분명 어려운 과목이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필요한 분야”라고 맞받았다.

해당 교육과정은 융합기초학부 설립추진단의 심의를 한 차례 거쳐 일정대로 추진될 예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KAIST는 융합기초학부에 50명을 편성하는 학칙 개편안을 이달 중 심의할 계획이다. 이미 13일 KAIST가 발표한 새 비전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에도 이름을 올렸다.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KEDI) 선임연구위원은 “이제는 모든 인재가 창의, 융합형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KAIST의 역량, 규모를 감안하면 혁신에 적합한 대학이라 본다”면서도 “한국에서 정책이 연착륙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전략적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변화는 정치한 집행전략으로 추진되는 제도와 구성원끼리의 소통에 의한 인식이 함께 만날 때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