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생각] "끊어진 대구 쇼트트랙 명성, 다시 찾았으면"
[사람과 생각] "끊어진 대구 쇼트트랙 명성, 다시 찾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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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환 계명대 전 교수
▲ 박남환 계명대 전 교수.

[한국대학신문 주현지 기자] 1966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1979년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한국 신기록을 네 번이나 갈아치웠던 박남환 전 계명대 교수. 그는 계명대 빙상부 창단 뿐만 아니라 한국대학빙상경기연맹 부회장, 국제대학스포츠연맹 쇼트트랙 기술위원장 등을 거쳐 쇼트트랙 열풍의 중심에서 후배 양성을 진두지휘했다. 은퇴 전까지 대구에서 빙상 선수 육성을 위해 발로 뛰었던 그에게 지역 빙상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1990년대 초, 대구는 쇼트트랙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그 열풍이 대단했다. 이를 두고 박남환 교수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경북 지역은 롤러스케이팅의 인기가 좋았다. 1972년에 동호인들에 의해 경북로울러스케이팅협회가 창단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열기가 이어오던 중 국내 두 번째 정규 실내빙상장인 ‘대구 파동실내빙상장’이 개장했다. 다수의 쇼트트랙 선수들이 롤러스케이팅 선수 출신이었던 것을 고려해보면, 당시 대구에 빙상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인적‧시설적 인프라가 마련돼 있었던 것이 작용했다고 본다. 또한, 지역민들의 관심 역시 대구가 쇼트트랙의 도시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이처럼 지역 차원의 열정과 관심 속에서 주옥같은 선수들을 다수 배출했다. “1995년 3월, 당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김소희 선수의 입학과 함께 계명대 빙상부가 창단될 수 있었다. 이후 계명대에 입학한 박주영‧안상미‧민룡 선수를 비롯해 김양희‧송경택‧이승재‧서호진‧김성일‧최은경‧진선유‧전다혜‧임효준 선수를 배출하며 대구 지역 쇼트트랙의 부흥기를 맞이했다.”

대구 지역은 동계스포츠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초석을 다졌지만, 현재는 과거의 명성을 잇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대구에서 기라성 같은 선수 다수를 육성했지만 2014년 소치 올림픽부터 아예 맥이 끊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에는 수도권은 물론 해외에서도 훈련을 위해 대구로 건너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신식 빙상장 10여 곳이 생겨났고, 대구는 이 흐름에 발맞추지 못해 상대적으로 낙후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인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타 지역의 신식 빙상장의 등장과 예산 감소로 지원이 미흡해지자 대구는 과거의 명성을 잃어갔다. 훈련 시설이 낙후돼 선수들이 대구에서 고도의 훈련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에 신식 훈련 환경이 갖춰진 서울‧경기에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선수들이 늘어났고, 대구 지역 인재의 다수가 수도권으로 옮겨갔다.”

박남환 교수는 지역에서 빙상 인재를 잘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학과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대학에서 활동하는 빙상부 지도자 중 코치는 있어도 교수는 극히 소수다. 대학은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전문가 영입을 위해 힘쓰고, 전문 인재를 양성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또한, 지자체는 과거보다 월등해진 선수들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구시는 국제규격 빙상장 설립을 계획하는 등 빙상 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지자체가 홀로 부흥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선수들을 길러낼 대학과 이를 뒷받침해줄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나간다면,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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