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게, 법조기관에 수차례 고통받는 피해자들

로스쿨 10곳 중 7곳, 젠더 관련 커리큘럼 없어

남성 중심적 시각 깨려면…성평등 의식 제고 ‘절실’

[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20대 여성 A씨는 지인으로부터 강간피해를 당해 고소했으나, 가해자 아버지가 고위장성이라는 이유로 경찰과 검찰이 가해자를 감쌌다. 특히 검찰 조사관은 노골적으로 가해자 편을 들고 “돈 보고 고소한 거 아니냐. 건강한 남자가 그러는 것은 가능하다”며 합의를 권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간한 ‘형사사법절차상 성폭력 피해자 보호방안에 관한 연구’에는 100여 개의 2차 피해 사례가 등장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수사ㆍ판결 기관의 ‘성평등 의식’은 판결 결과를 좌우하는 절대적 잣대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들의 낮은 성평등 의식 수준 탓에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이에 법조인을 양성하는 로스쿨에서부터 성평등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법적 판결이다. 그러나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검찰청이 조사한 ‘2017 범죄분석’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기소율은 약 44.8%로 불기소율 51.6%보다 낮았다. 기타 강력 범죄의 기소율(65.9%)이 불기소율(30.1%)보다 2배 이상 높은 데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성폭력 판례뒤집기 토론회에서 “죄를 판단하면서 애매한 경우가 많아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상황이 많다”며 “법조계가 ‘의사에 반하는’을 지나치게 정밀하게 해석하고 ‘강제성’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는 데서 비롯된다. 가해자의 시선에서 ‘이 정도는 해줘야 저항하고 싫다는 걸 알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잘못된 의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법조인들을 양성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성평등 의식을 높이기 위한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5개 로스쿨 중 관련 교과목이 개설된 곳은 8개로 32%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1개 과목만 개설된 정도고,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이어서 전체 학생 중 이수율은 더욱 떨어졌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2015년도 파악한 로스쿨 중 지금까지 관련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곳은 △동아대(젠더법세미나) △부산대(여성주의법 이론연습) △이화여대(젠더법학 외 13과목) △인하대(젠더법 실무) △원광대(여성폭력범죄) △전북대(젠더와 법) △한국외대(젠더와 법) △한양대(법여성학) 등이었다.

이화여대는 전체 로스쿨 중 유일하게 젠더법학이 특성화 분야로, 관련 과목이 14개였다. 서울시립대는 여성과 법이라는 과목이 있으나 2년 단위로 열려, 이번 학기에는 개설되지 않았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장은 “시험 필수 과목이 아닌 데다가 인증평가 항목에 관련 기준이 미흡해 학교에서 소홀히 다루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판사는 양심과 법에 따라서 판결을 내린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며 “특히 성폭력 사건이 그렇다.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탈피해 피해자 입장에서 보려면 최소한 로스쿨 내 관련 커리큘럼이 개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형규 법전원협의회 이사장(한양대 법전원장)은 “한두 번의 교육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외부 전문강사를 초청해 특강이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올바른 법조인의 양식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법조 실무능력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고려해 선발한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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