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에 따라 자율개선·한계대학 갈려 부담 심해…“탈모까지 온다” 호소

권역별 평가에 정보 샐라 ‘쉬쉬’ 각 대학들 안부 전화도 꺼려

▲ 2018 대학 기본역량진단 편람 설명회에 참석한 대학 관계자들이 교육부 관계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대학팀] 대학기본역량진단 보고서 제출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대학들은 보고서 작성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재정지원 제한은 물론 폐교라는 극단의 상황까지 몰릴 수 있어 대학들은 말 그대로 ‘사활’을 걸고 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의 정성평가 부분 보고서는 오는 27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이후 대학들은 4월 말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지표에 따른 정량적 수치를 추가로 제출하게 된다.

15일 대학가에 따르면 교수·직원을 따로 구성해 대학기본역량진단 위원회를 만들거나 전담하는 조직을 구성한 곳도 있다. 상지대는 지난 가을부터 대학기본역량진단 위원회를 만들어 준비해왔으며 홍익대는 교수·직원 전담팀을 만들어 아예 방도 따로 두고 업무에 매진해왔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지난 주 까지 초안을 마련하고 이번 주 검토 및 수정보완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손창원 홍익대 기획팀장은 “이번 주에 검토 ㆍ 확인 작업을 하고 23일쯤 완전 마무리한 뒤에 업데이트도 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전했다.

보고서 작성에 부담감을 호소하는 대학가 사정을 감안해 교육부는 보고서 양식을 지정하고 본문은 10항목, 각 항목마다 페이지 분량 제한을 둬 총 62페이지 이내로 하도록 했다. 지난 평가에서는 양식과 분량제한이 없어 1만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증빙자료도 인쇄가 아닌 PDF파일로 제출하도록 해 부담을 덜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에서는 보고서 작성에 허덕이고 있다. 그동안 대학이 해왔던 프로그램들과 거둔 실적을 일목요연하고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개학을 하면서 교수들은 수업에, 직원들은 학사 일정에 쫓겨 시간이 부족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준비하는 교직원들은 야근과 주말 근무를 불사할 수밖에 없다.

오중산 숙명여대 기획처장은 “설 이후부터는 매일 8시에 출근해서 날을 넘기고 퇴근하는 월화수목금금금이 이어지고 있다”며 “힘든 정도가 아니다. 하루에 5시간 이상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보고서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의 정원이 감축되느냐 재정지원이 이뤄지느냐가 갈리기 때문에 부담감도 상당하다.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은 평가를 통해 최대 60%의 대학에는 정원감축 없는 일반재정지원을 하고 나머지 40% 대학에는 정원감축 및 컨설팅이 들어간다. 일부 지표나 내용들은 보고서 작성자의 의지나 능력으로 조정할 수 없음에도 작성된 보고서에 대학의 명운이 걸려있다 보니 책임감과 부담감이 막중하다. 박진석 동의대 기획평가팀장은 “내 나이 53세에 탈모가 왔다. 머리가 항상 멍하고 가슴 한 쪽에 역량진단이 계속 걸려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두 차례의 평가에서 재정지원제한이 걸렸던 대학들은 이번 평가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광현 한성대 기획처장은 “1주기 평가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 교육부 컨설팅을 받으면서 개선된 게 많아 그 부분을 중점으로 뒀다”며 “1주기 때 이후 개선된 것이 많고 노력을 많이 해왔다”고 피력했다.

대학기본역량진단과 대학 간 통합을 준비하는 대학들은 업무 이중고에 빠져있는 상태다. 당초 교육부는 대학 간 통폐합을 단행할 경우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통폐합을 신청한 경주대ㆍ상지대는 일단 평가는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통폐합을 준비 중인 한 대학 관계자는 “예전 구조개혁평가, 중간평가, 컨설팅,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 통합까지 매년 평가를 하다보니까 교직원도 지쳐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이 권역별로 바뀌면서 지역대학 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난 구조개혁평가가 전국 단위로 치러졌던 것과 달리 대학기본역량진단은 권역별로 평가하면서 한 권역에서 대학들이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방 한 대학 관계자는 “예전에는 서로 준비 중인 걸 은근슬쩍 공유도 했는데 지금은 권역별로 하다보니 흔한 말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서로 일체 전화도 없고 안부전화 한 통 하기도 불편해졌다”며 “재정지원을 못 받는 걸 떠나서 지방은 자율개선대학에 못 들어가면 사회적 시선이 바뀌고 생사가 갈릴 수 있어서 절박한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국립대 역시 진단 준비에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는 국공립대 육성을 통한 고등교육 발전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번 진단은 국공립대도 예외 없이 받아야 한다.

김학용 전북대 기획처장은 “거점국립대를 육성하겠다고 해놓고 평가에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방향과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현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이 있는데 그 방향과 어긋나지 않게 평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지역분권화라는 게 거점국립대 위주로 인재를 모으고 거기서 파생된 기술로 지역이 잘살 수 있게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정책방향에 맞게끔 평가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는 이번 진단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향후에는 고등교육 발전이라는 대의적 목표를 위해 전향적인 변화가 일어나길 희망하고 있었다. A대 기획처장은 “인력ㆍ재정ㆍ행정이 다 평가에 쏠려있다 보니 교육을 위한 여력이 없다”며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서 대학을 독려해줄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B대 기획처장은 “평가를 통해 재정지원을 하는 게 골자인데 차라리 그 돈 안 받고 대학 자율을 더 강화시켜 주면 좋겠다. 그게 더 건설적”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