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이후 허리띠 졸라맨 대학, 경상비·교육비 감소로 경쟁력 약화

국가의무인 교육을 대신하는 사립대, 국립대와 차별 없어야 주장도
“대학의 신뢰 회복 함께해야…국민 신뢰 회복되고 있는 지금이 적기”
▲ 본지가 1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와 공동으로 '고등교육 재정 확대를 위한 입법 방향' 세미나를 주최했다. 황준성 숭실대 총장을 좌장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연희·구무서·김정현 기자] 16일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고등교육 재정 확대를 위한 입법 방향’ 세미나에서는 고등교육재정 확보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의 발제 이후에는 △김성익 삼육대 총장 △이강복 교육부 대학재정장학과장 △이재력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장 △최용섭 한국대학신문 주간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영달 변호사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 등이 토론에 참가했다. 좌장은 황준성 숭실대 총장이 맡았다.

토론자들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과 사립대학재정지원을 위한 특례법 등 국가 발전을 위한 대학교육 지원 확대라는 방향성에는 동감하면서도 세부적 각론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표출했다.

▲ 김성익 삼육대 총장.

김성익 삼육대 총장은 사립대의 재정위기가 국가 경쟁력 위기로 직결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김성익 총장은 사립대가 지금과 같은 재정 위기를 겪게 된 이유로 대학설립 준칙주의와 반값등록금을 꼽았다.

김성익 총장은 “김영삼 정부는 당시 대학 수요가 넘치자 교육복지라는 명분으로 대학은 늘리되 그에 상응하는 재원은 민간에 떠넘겼다. 이후 대학등록금이 올라가 비싸다는 인식이 팽배해지자 이명박 정부는 교육복지 방향을 비용 문제로 전환해 반값등록금을 시행했다. 전혀 교육공학적인 고려가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반값등록금 정책이 실시되면서 대학운영 지원금은 증가하지 않고 대학생의 평균 등록금 부담액을 떨어뜨리자 사립대의 재정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시기에 정부의 재정지원 기조도 일반재정지원이 아닌 프로젝트성 지원사업으로 바뀌면서 예산 사용을 특수목적에 의해서만 쓸 수 있도록 해 대학의 운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김 총장은 “중소형 사립대 총장 입장에서 재정상황이 정말 막막하다. 이미 서울만 해도 75%의 대학들이 인건비를 동결하거나 감축했다. 이미 대학들은 더는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였다”고 말했다.

▲ 16일 본지와 사총협, 교문위 공동 세미나에서 토론 패널로 나선 김성익 삼육대 총장이 발표하고 있다.(사진=한명섭 기자)

무엇보다 대학의 재정난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국가의 경쟁력이 하락하는 점을 우려했다. 김성익 총장에 의하면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우리나라 대학 교육 경쟁력은 2011년 59개국 중 39위였으나 2017년에는 63개국 중 53위로 하락했다. 대학시스템의 질 평가에서도 2011년 137개국 중 55위였던 것이 2017년 81위로 후퇴했다.

국가장학금이 시행된 2011년부터 사립대 재정난이 시작됐고 한국 대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가 OECD 국가 평균의 66%에 불과한 것과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비가 OECD 국가 평균값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한 것이 병합된 결과라는 의미다.

김 총장은 “사립대학교의 재정 위기는 우수 교원을 확보하거나 첨단과학시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해 국가 경쟁력 위기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학의 교육시설 강화와 경상비를 위해 최소한의 지원을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없다면 한국의 대학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안정적으로 강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사립대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를 보장하는 재정지원 관련 법률이 어떤 형태로든지 신속히 제정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주영달 변호사는 법리적 측면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제철웅 교수는 “헌법상의 교육 기본권인 교육을 국가 대신 사립대가 이행하는 대리이행자로서의 역할을 사립대가 담당한다고 하면 국가가 부담할 의무를 사립대가 대신 이행하는 거라 국공립과 마찬가지로 재정지원해줄 법적 의무가 생긴다”며 국가가 사립대를 지원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아울러 국가의 교육권 보장이라는 의무는 국공립뿐만 아니라 사립대 학생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며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차별을 없애 학생들이 소속된 대학에 따라 국가로부터 차등적인 지원을 받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 국공립대학의 학생들이 받는 교육 혜택만큼 사립대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가와 사립대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는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국가가 사립대에 대해 제왕적 감독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법에 정해놓은 세부적 사항에 대해 위법한 혐의가 있을 경우 감독권을 행사하는 거지 포괄적으로 감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등교육기관에 교부금을 지원하고자 할 때에도 평등의 원칙, 국가와 고등교육기관 간 대등한 당사자의 원칙이 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공급자 규제 중심의 고등교육정책을 수요자의 지위강화로 점차 대체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대학생의 법률상 지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 주영달 변호사.

주영달 변호사는 헌법에서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고 규정한 만큼 정부의 등록금 규제가 헌법적 측면에서 사학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자율성이 기본권이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에 해당된다면 목적의 정당성이나 수단의 적절성도 인정될 수 있지만, 대학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위헌 가능성이 커져 이를 희석하기 위해 국가에 의한 재정지원이 전제돼야 한다고 봤다.

그럼에도 정부의 재정지원이 대학 통제수단이 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재원이 비효율적으로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에 의한 엄격한 관리감독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개별 법률안에 대해서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입법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특례법의 내용을 교부금법에 포함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최용섭 본지 주간.

그동안 수차례 고등교육재정교부금 법안이 발의됐음에도 통과되지 않은 원인 분석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용섭 한국대학신문 주간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통과되지 않음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환경이 2007년부터 지금까지 입법화에 실패한 원인이라며 “(2007년 당시에는) 원만하게 나오던 제안이 지금은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는 비명소리로 바뀌었다”며 국회의 책임을 물었다. 교육부를 향해서도 "고등교육으로 재정의 중심 축을 옮겨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논의의 중심은 대학을 향했다. 그는 "특단의 정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여기 계신 총장들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발의 후 입법과정을 방기하는 국회뿐만 아니라 대학 스스로가 처한 현황을 정확히 제시하고, 투자가 낭비가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발전을 위한 것임을 알려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정지원의 경직성, 경쟁력 없는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 등 사회적인 반대 여론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 주간은 "예산당국이 정권마다 역점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했으면서 공공성과 책무성의 관점에서 살펴야 할 고등교육은 방기한다"고 반대 여론을 물리치면서도, 대학들 스스로가 이를 설득해내기 위해 언론, 시민단체와 치열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총장들이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대학사회가 어려운 것은 자타가 공언하는 일이다. 대체투자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소요재산도 부족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위한 논의, 타당성과 필요성은 이제 전파가 됐다. 동어반복적인 논의가 더 이뤄질 필요가 없다. 다음 단계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대학 사회의 단결된 움직임을 요청했다.

▲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운동에 가장 먼저 앞장서왔다”고 강조한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반값등록금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함께 갈 수 있으므로 대립각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학교육의 질을 위해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목표는 같다는 것이다. 사립대학 재정특례법도 사회적 신뢰 회복을 전제로 입법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국공립대에 비해 사립대가 외면받는 상황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학부모가 일방적으로 교육비를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반값등록금을 요구하고, 대학의 예산이 작년보다 늘어나 교육의 질을 담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획기적으로 예산이 확대됨으로써 고등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교직원의 처우도 존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나 지자체가 반값등록금이라는 정책에만 치중하는 대신, 대학이 학생과 사회의 미래를 위해 누려야 할 국고보조금은 조금 늘리면서 운영의 자율을 줄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만 입법을 위해서는 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는 과정이 함께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정상화된 사학이 많아지며 국민의 신뢰가 회복돼 가는 지금이 입법의 적기”라고 내다봤다.

▲ 이강복 교육부 대학재정장학과장.

이에 대해 교육부에서는 고등교육 재정 확대 큰 방향에는 동의를 표하면서도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강복 교육부 대학재정장학과장은 교육부가 사립대 재정위기 사실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립대가 그동안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 동결정책에 발맞췄고, 최근 입학금 축소·폐지정책에도 보조를 맞췄다. 10년 가까이 재정압박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온 것”이라며 “이전 국회부터 여러 교부금법이 발의됐는데, 이번에 제대로 논의 활성화되는데 긍정적이다. 사립대학들과 함께 공론화 노력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이강복 과장은 “단기간에 이를 달성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만큼, 과도기적으로 특수목적사업을 통폐합하고 일반재정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역량진단 이후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일반재정을 지원하고, 대학들이 이를 잘 활용해 성과를 낸다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키고 시기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 이재력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장.

이재력 교육부 사학정책과장은 사립대학 지원 특례법 중 ‘자율학교 지정’에 대한 조항에 우려를 표했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온전한 자율과 특례를 누리는 대학으로 대규모 주요대학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고, △등록금 인상 허용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수익사업 허용 △사학연금 부담금 승인 예외 등은 비영리법인으로서의 사학에 대한 지원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재력 과장은 “현재 법령에서 교육용 기본재산과 수익용 기본재산을 구분한 이유는 설립운영상 학생 수에 비례해 교사와 교지를 확보해야 하고, 무분별하게 수익사업을 하는 데 쓸 경우 최소한의 기준을 준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특례법도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사립대의 재정난 타개를 위해 지난해 3월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교육용 기본재산을 수익용으로 전환하는 사립학교법 일부개정안을 언급하며 가능한 빨리 통과시켜서 교비회계로 수익이 보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각 대학이 해외 캠퍼스 진출을 통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여러 창구로 사립대에서 건의하는 제도개선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

이에 대해 발제자인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일본은 사립학교법 외에 별도로 ‘사학진흥조성법’을 제정하고, 간접기구인 사립학교진흥공제사업단이 문부과학성 재원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사립대학들이 주장한 특례법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뜻이다. 송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사립대 교직원 인건비의 절반을 지원하며, 연구경비와 학생지원경비도 일부 지원하고 있다. 2015년도 당시 4300억엔(4조3000억원 상당)을 지원했다.

송기창 교수는 또한 “영국의 경우 간접기구 고등교육기금위원회(HEFCE)를 통해 사립대도 국립대학처럼 지원하며, 정부가 직접 규제하기보다는 간접기구를 통해 평가와 지원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추진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과 유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 황준성 숭실대 총장.

이날 토론의 좌장을 맡은 황준성 숭실대 총장은 토론을 매조지하면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과 사립고등교육기관 지원·육성을 위한 특례법의 추진전략을 강조했다.

황준성 총장은 “사립대의 재정문제는 지금까지 충분히 논의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논의단계를 넘어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실행하는 추진전략을 세우는 단계가 돼야 한다”며 “송기창 교수의 발제에서 사립대에 필요한 최소 소요 재정규모가 4조5000억원인데 국가 예산이 400조원이다. 국가 예산의 1%를 고등교육에 투자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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