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혁 (한국복지대학교 의료보장구과 11학번)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아이스하키 동메달리스트 쾌거

▲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동메달이 확정된 뒤 문재인 대통령과 선수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에서 아래줄 오른쪽이 최광혁 선수. (사진=평창조직위)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한국서 제가 선수 생활하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올림픽이어서 더 뜻깊고요. 대한민국 평창에서 뛸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운동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 감사합니다.”

18일 폐막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한 편의 드라마가 나왔다.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장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3·4위 결정전.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3피리어드 11분 42초에 터진 장동신 선수의 결승 골에 힘입어 한국이 승리했다. 동계패럴림픽 출전 사상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당당히 제 역할을 다했던 선수단 가운데 특별한 사연을 가진 한 선수가 있다.

꽃제비 출신의 ‘탈북 청년’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당히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최광혁 선수다. 최 선수는 “그간 아주 힘들 때도 많았지만, 국민들로부터 박수와 응원을 한 몸에 받게 돼 기쁘다”고 했다.

함경북도 화성군이 고향인 그는 찢어지는 가난과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부모와 헤어져 탈북길에 올랐다. 여동생과 함께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지만, 9세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여동생과도 헤어져 혼자가 됐다.

그는 ‘꽃제비’가 돼 먹을 것을 찾아헤맸다. 밥값을 벌기 위해 함북도 청진역에서 기차가 정차하면 몰래 올라타 객실을 돌며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하지만 기차서 내릴 시기를 놓쳐, 엉겁결에 뛰어내리면서 왼발이 바퀴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그는 “마취도 없이 수술을 받아 기절했다”며 “정신을 차려보니 왼쪽 다리가 없더라”고 했다.

돈도, 가족도, 희망도 없던 그에게 한 브로커가 접근했다. 그는 “당시 함경도에는 부모 없는 아이를 데려다 장기를 떼어내 판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며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중국을 거쳐 2001년 한국 땅을 밟았다”고 말했다.

▲ 최광혁 선수 (사진=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은 2011년 한국복지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즈음 세 번의 수술 끝에 의족을 했었는데, 하키 선수 출신이었던 교직원의 소개로 2014년 ‘장애인 아이스하키’를 접했어요.”

‘장애인 아이스하키’는 특수 제작된 썰매를 타고, 스틱 2개를 사용해 얼음을 찍어 썰매를 치며 스틱으로 퍽을 때리는 경기다. 그에게 아이스하키는 전부가 됐고, 하키를 하면서 꿈이 생겼다. 태극마크를 달고 2018 평창패럴림픽에 나가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지만, 운동에만 전념했습니다. 내가 사는 이 땅에서 열리는 장애인 올림픽이라서 꼭 나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해 드디어 꿈의 태극마크를 달았죠.”

2018 평창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이탈리아와의 3·4위 결정전에서 동메달 획득이 확정된 뒤 선수들은 빙판 위에 태극기를 깔아놓고 애국가를 불렀다. 거기에 그도 있었다.

“아이스하키는 어릴 적 잃은 엄마 같고, 터전을 마련해준 새 조국과도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꿈만 같던 성적을 거두게 돼 더욱 뜻깊은 대회가 될 것 같습니다. 평창 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남북 여자 단일팀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잖아요. 앞으로 장애인 아이스하키 팀에도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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