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밤을 밝힌다

21세기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과학기술이다. 그리고 이공계대학의 연구실은 이를 위한 인력양성과 신기술개발의 전초기지다. 그러나 말만 무성할 뿐 이에 걸 맞는 대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학의 연구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한국항공대 우주시스템 연구실을 통해 오늘날 이공계대학의 교수와 연구원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편집자 젊음의 거리인 서울 신촌에서 서북방향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국항공대학교. 그 곳 교문을 들어서면 다른 대학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광경이 목격된다. 큰 굉음과 함께 활주로를 박차고 나가는 경비행기와 헬리콥터. 아하! 라는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다. 활주로는 머리를 쭉 빼고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 봐야만 할 정도로 길게 뻗어 있다. 그 건너편으로 아련히 ‘ㄷ'자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항공대 심장인 각종 연구실과 실험실이 있는 곳이다.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인공위성시스템 및 부품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우주시스템연구실(SSRL)'도 이 건물 기계관 1층에 자리하고 있다. 연구실 출입문을 여니, 긴장감이 팽팽히 감돈다. 뜨거운 연구 열기 탓일까. 각종 외국전공서적으로 들어찬 책꽂이를 칸막이로 3등분한 20평 남짓한 연구실을 훑어보니, 비좁은 공간마다 책상 위에 3~4대의 컴퓨터와 보다만 책들이 널려 있다. 한 곳에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과학도들이 작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한 여학생이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연신 클릭 한다. 낯선 이방인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한쪽 길섶은 책가방을 멘 이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연구원인 학생들이 전공 수업을 받으러 가는 모양이다. 벽에 붙어 있는 흰색 칠판에는 ‘수 5시(PM) : 현재 진행상 문제점 문서로 제출’, ‘목 9시(AM) : TD(기술문서) 완료’, ‘목 5시(PM) : 각 서브별 접속제어 문서 재검토’, ‘추계학술논문 발표 준비’ 등 ‘주간 수행사항’이란 제목아래 각종 계획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인공위성’ 모형이 떠있다. “피코위성(picosatellite : 1kg급)인 큐브셋(Cubesat)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해 현재 HAUSAT-1(Hankuk Aviation University SATellite-1)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사업의 시스템을 총괄하는 대학원생 김준태 시스템 매니저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우주개발 예산을 최소화하면서 성능 및 활용을 극대화하는 “Faster, Better, Cheaper (보다 빠르게, 보다 나은, 보다 저가격의)” 의 모토 하에 소형위성 개발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으며, 특히 나노위성(10kg급)과 피코위성을 개발하는 “학생 프로그램”이 미국 및 일본 대학들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일환인 큐브셋 프로젝트는 가로, 세로 및 높이가 각각 10cm이고 무게가 1kg인 정육면체의 피코 위성을 개발해 위성부품의 우주 인증, 우주실험 및 교육용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현재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일본의 동경대학을 비롯하여 전 세계 20여개 대학에서 이 국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항공대 우주시스템연구실이 유일하다. 이 곳에서 개발중인 HAUSAT-1은 2004년 초 러시아 발사체에 의해 발사될 예정이다. HAUSAT-1은 고도 650 km, 경사각 65도의 지구궤도에서 약 1년 동안 위성부품의 우주 인증, 각종 우주실험 등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현재 연구실에는 이 개발을 위해 프로그램 매니저인 장영근 지도교수(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를 중심으로 박제홍씨 등 박사과정 2명, 김영현씨 등 석사과정 5명, 임병훈씨 등 학부생 4명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중 여학생은 김선옥씨 등 2명이다. 장 교수는 90년대 초부터 무궁화위성 1, 2호 개발 및 아리랑위성 1호 개발 프로그램 전 과정에 참여하였으며, 지난 2000년까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및 그룹장으로 아리랑위성 2호 개발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연구실의 궁극적 목표를 “학생들이 위성 설계, 해석, 제작, 조립, 발사 및 운영의 전체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실질적인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졸업 후에 위성개발 분야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위성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공학이 응용에 기초한 학문인 만큼 현장에서 요구하는 교육을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위성시스템 개발은 인력의 양(quantity)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quality)이 중요하다. 즉 경험인력이 있어야만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연구실은 전자, 구조, 자세제어, 통신, 지상국, 탑재 컴퓨터, 열 제어, 시스템 조립 및 시험 등의 팀을 갖추고 있다. 총 11명의 학생들은 2개 이상의 서브시스템 팀에 속해 있으면서 위성시스템 및 서브시스템 개발에 대한 능력을 키우고 있다. 연구개발기간이 2~3년 이상인 점을 감안, 연구의 연속성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학부 4학년생을 보조 연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인공위성 관련 용어, 약어 등을 우선 교육시킨다. 기술개발은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2차례에 걸쳐 열리는 프로그램 전체회의와 각 서브시스템 회의, 수시로 진행되는 장 교수와의 세미나수업 등에 의해 진행된다. 세미나와 각종 설계검토회의는 반드시 영어로 진행함으로써 학생들의 영어실력도 증진시키고 국제 프로그램으로 외국교수 및 학생과의 정보 교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물론 각 연구원들의 경우 학위를 받기 위해 취득해야 하는 학점은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연구실 내부적으로 출근시간을 오전 9시, 퇴근 시간을 오후 7시 30분으로 정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은 무의미하다. 밤새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공위성 자세제어 분야 팀장 서승원씨(4학기)는 “몇몇은 아예 간이침대를 가져다 놓고 일한다”고 말한다. 연구원이자 학생인 이들은 사석에서는 형, 아무개야 라는 호칭을 써도 공식석상의 경우는 반드시 00서브시스템 매니저, 씨, 양 등의 호칭을 사용한다. 사적인 관계는 종적일 수 있지만, 업무는 횡적이어야 한다는 장영근 교수의 연구실 운영 원칙이다. 김준태 시스템 매니저는 “월드컵 때 히딩크가 상호 활발한 의사표현을 위해 선배에게 이름을 부르게 했다면, 이 곳에서는 일을 체계적으로 각 분야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서로 존칭을 쓴다.”고 설명한다. 연구원들의 월급은 지도교수가 정부, 연구소 및 기업으로부터 따온 연구개발 사업 프로젝트 연구비 중 일부인 인건비로 해결한다. 대학원 등록금 및 생활비가 필요한 대학원생들에게는 충분한 액수가 아니어서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 탑재컴퓨터 분야 연구원인 김영현씨 (2학기)는 “근본적으로 정책당국과 학교가 연구원 학생들이 마음놓고 열심히 연구할 수 있도록 장학금 혜택을 대폭 늘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이공계 위기, 대학원 지원기피 요인이 바로 이 연구실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탑재체 분야 김영석씨(4학기)는 “바쁘고 힘들고, 경제적으로 불안하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사회의 공대나 엔지니어에 대한 인식이다. 아직도 조선시대 사농공상 의식이 뿌리 깊은 것 같다. 많은 공대생들이 전공분야와 상관없이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대학입시를 다시 치루어 의대로 전공을 바꾼다”고 이공계 경시의 사회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연구실에 남아있는 이유는 ‘비전’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해볼 수 없는, 인공위성을 설계부터 제작과 운영까지 할 수 있는 이 연구실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우주기술(ST) 분야를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 환경기술(ET) 및 문화기술(CT)과 함께 21세기 국가발전 전략기술로 선정해 지원을 강화하고 있고, 과학기술부에서는 “국가 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을 통해 2015년까지 세계에서 10위 내에 드는 우주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국내에 800명 정도에 불과한 위성분야 전문인력도 2015년까지는 약 4,500여명 정도로 보강할 예정이다. 전력계 팀장인 박제홍씨는 “몇 년 뒤 내가 만든 인공위성이 우주공간에 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모든 힘든 일이 녹아버린다”며 “세계 각국이 우주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수 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위성이란 소형위성은 통상 무게가 500kg 이하의 위성을 총괄해 지칭한다. 이는 다시 미니위성(100-500kg), 마이크로 위성(10-100kg), 나노위성(10kg 내외) 및 피코위성(1kg 이하)등으로 구분하며, 특히 나노위성 이하의 크기를 극소형위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소형위성은 지구관측, 저궤도 위성이동통신 및 우주과학실험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으며, 임무설정에서 발사에 이르기까지 개발기간이 짧기 때문에 선행기술이나 새로 개발된 장비의 시험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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