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 이종희 교수

이제 5학년이 된 막둥이의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무리하게 선행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모의 의견을 존중해 지금까지 교과 진도를 늦출 만큼 늦췄으나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취지의 전화였다. 이야기인즉슨, 한 학기 선행은 학원의 지침상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며, 올 여름방학부터는 5학년 모두 중학교 수학을 시작해야 하니 학원 오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원의 교육방침이 그러하니 마음에 안 들면 학원을 그만두면 되는데, 오질 없는 엄마는 아이가 선생님도 좋아하고 학원도 좋아하는데 꼭 그렇게까지 선행을 해야만 하느냐고 하소연 해 본다. 그리고 학원에 다니는 그 많은 아이들이 중학교 과정을 다 따라가는 것도 아닐 터인데 일괄적으로 예비 중학을 운영할 수 있는지 참견까지 해본다.

제주도에 입도할 당시 나는 제주의 교육 현실에 문외한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큰아이의 친구 엄마가 차량 운행이 안 되는 다른 동네까지 학원을 보내기 위해 오후 시간 내내 할애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고서야 고등학교가 비평준화돼있으며, 30%도 채 안 되는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른바 ‘인서울’을 위한 대입 경쟁을 연상케 하는 치열함이었다. 과학고나 외고도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라니, 참으로 어이없는 현실이었다. 처음에는 설마 하며 의심했던 일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며 아이의 내신 성적에 바싹바싹 목이 타는 느낌이었다. 그때 엄마들이 열심히 자체 차량 운행을 하며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 나르던 이유를 절실히 알게 됐고, 슬프게도 그 학원들 중 어느 한 곳에 지금 막둥이가 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름난 학원이란 곳의 생리가 그러하듯, 학원의 명성을 드높여줄 소수의 영재들을 가리고자 평범한 보통의 학생들이 소화하기 힘든 양의 숙제와 고난이도의 문제, 그리고 두세 학년의 선행 교육을 실시한다. 학습 능력이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들은 이내 학원의 부적응자가 되고, 그래서 다른 학원을 전전긍긍하다가 공부와 철천지원수가 되고 만다. 이 모든 과정에 공교육은 없거나 부채질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리하게 사교육에 휘둘리다가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진입에 실패한 70% 이상의 학생들은 모두 인생의 낙오자와 같은 좌절을 맛보게 된다. 자신의 교복이 부끄러워 학교 교문을 나서는 순간 가방에 구겨넣어 버리는 아이들이 제주에 있다. 아무런 꿈을 꾸지 못하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것만을 일삼는 아이들이 제주에 있다. 애써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인서울’ 권역에 해당되지 않는 학생은 다시 공교육에서 들러리 역할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중학교 때까지 뒷짐 지고 있던 공고육은 대입이라는 문턱을 앞에 두고 ‘적자생존’의 정글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우리 학교에 지원한 학생들은 제주도 고입에서 한 번 좌절을 맛본 학생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비슷한 눈빛과 비슷한 태도를 지닌다. 마치 목표를 갖고 꿈을 꾸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양, 자신 없고 소극적이고 불안하다.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비정상적인 고등학교 입시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정상적인 너희가 주눅들 건 하나도 없다고, 너희들에게 적성 계발의 기회를 주지 않고 꿈을 찾아주지 못하는 한국 교육이 문제라고, 이제 시작일 뿐이니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라고, 절대로 늦지 않았다고, 가슴으로 안타깝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많이 속아본 아이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곧 지방선거다. 지방이 살아나려면 지방을 지킬 아이들을 건강하게 성장시켜야 한다. 닦달질하는 교육 말고, 꿈꾸는 것을 죄스러워하는 교육 말고, 희망이 되는 교육이 실현되길 나는 꿈꾼다. 화두는 다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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