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 수성대학교 경영부총장

▲ 이형민 부총장

영화 '살인의 추억'에 배우 송강호가 분한 전문대학 출신의 '박형사'가 나온다. 그는 전문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비과학적 수사를 하는 형사로 취급당한다. 이렇게 해서 전문대학이 한 번 더 죽는 것을 보았다. 감독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고질적으로 그렇다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새 헌법안이 관심을 끌고 있다. 다른 내용들보다도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천부인권적 성격의 기본권을 가진 사람으로 확대했다거나 근로라는 용어 대신에 노동으로, 일정 노동에 대해 동일가치 임금을 지급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려는 정책 등이 보여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그중 신설되는 기본권에 특히 눈길이 간다.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생명권, 재해 예방 및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갈 안전권, 알권리와 자기정보통제권 및 정보격차로 인한 폐해예방을 위한 정보기본권, 사회안전망 구축 및 사회적 약자의 권리 그리고 기존 평등권의 강화 등이다.

특히 평등권은 기존의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금지에서 그 사유로 장애, 연령, 인종, 지역이 추가됐고, 성별과 장애 등으로 인한 차별시정과 실질적 평등 실현을 위한 노력과 의무가 신설됐다. 그간 우리 사회의 불편함을 가져왔던 내용들 중 불평등과 관련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들이 다수 반영됐다는 측면에서 크게 환영한다. 그런데 이 평등권에서 우리 사회에 엄청난 폐단을 가져왔던 것으로써 꼭 추가해야 할 것이 바로 '학벌 평등'이다. 우리나라 법률이 정한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졸업생이면 사회적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실력을 의미하는 학력 평등이나 호봉 동등까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특정 대학출신자들이 파벌로 행세하는 이른바 학벌과 그 파벌적 권력 작용이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분명 학벌은 계급이 아닌데도 특정 학교 출신자들이 보다 많은 대우와 혜택을 보거나 심지어 권력을 독점하게 되고,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화시켜 왔다. 이런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그것도 시급히! 뭐 그런 것을 가지고 기본권 운운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직접 당해보면 또 당하는 것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일등대학을 졸업해야지 출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무엇보다 권력획득 수단으로 학벌이 최상의 길이라는데 사로잡혀 있다. 실제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학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1%라는 조사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식교육에 올인하고 모든 것을 건다. 우선 일류대학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여의치 않으면 상위대학에 편입이라도 하면서 학벌세탁에 골몰하기도 한다.

그래도 서울소재 주요대학에 대해 소위 지・잡・대로 표현되는 지방대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지역인재 할당제를 실시하기도 하고 또 최근에는 블라인드 면접이라는 방안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전문대학은 여기도 끼지 못해 같은 고등교육기관인데도 졸업생들이 겪는 불평등과 그로 인한 심적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문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본질적 임금차별은 물론이고 승진에서도 차별이 많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전문대학 졸업생에게 드리워진 낙인을 한국형 카스트제도라고까지 하겠는가.

오래전부터 관행이 된 대기업 공기업 입사에 전문대생의 기회 박탈, 각종 기술사 자격시험에서 전문대생의 응시요건 차별, 지자체 출연의 장학숙에 전문대생 입사금지 등. 며칠 전 경찰대학은 2022년부터 편입생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 문호를 일반대학을 졸업한 학생만 받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전문대학생은 부모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에 처해 있고, 전문대생이 일반대생에 비해 기초생활수급자 및 저소득분위 비율이 많아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으며, 등록금 대출비율도 일반대생보다 6%정도 높은 50.98%이다. 그래서 전문대학 졸업생들은 학업에서의 실패 경험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 및 무력감을 가지고 있고, 홀대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패배감마저 경험하고 있다. 새 헌법에서 평등권 강화가 그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더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면 당연히 전문대학 졸업생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아니 배려까진 필요 없고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얼핏 생각하면 평등권에 학벌을 넣겠다는 것이 엉뚱한 주장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실력부족으로 인한 측면 외에 태생적으로 부모의 능력과 재력 때문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각성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전문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에 학벌을 통한 신분 대물림과 학벌이 만들어낸 보편적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헌법적 정신의 구체화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고쳐지지 않을 고질병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