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재 서울교대 교수·윤리교육

2018년 2월 5일부터 3월 16일까지 진행된 중·고교 미성년 자녀를 자신의 논문에 공저자로 등록한 교수들에 대한 교육부의 제2차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제1차 조사 결과에서는 29개 대학 82건 논문에서 미성년 자녀가 공동 저자로 올린 것으로 드러났는데 제2차 조사에서는 이에 더해 20개 대학 56건 논문이 추가돼 2007년 2월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10년간 총 49개 대학에서 138건의 논문에 미성년 자녀가 공동 저자로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교수는 3~5건의 논문에 자녀를 공동 저자로 올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언론과 시민들은 조사된 사례 중에 부당한 저자표시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엄정하게 검증해 연구부정행위로 판명될 때 강력하게 책임을 묻도록 요구하고 있다.

나이가 어린 중·고등 학생이라고 해서 또는 교수의 자녀라고 해서 학술 논문의 공동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논문 저자로서의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기여를 했으면 그 논문의 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해당 연구에서 저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공헌을 제대로 하지 않고도 저자가 되는 경우다. 교육부나 각 대학의 연구윤리 지침을 보면, 부당한 저자표시는 '연구내용 또는 결과에 대하여 공헌 또는 기여를 한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저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거나, 공헌 또는 기여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 또는 예우 등을 이유로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로서 연구부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저자로서의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기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각 학문 분야별로 통일된 잣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저자 관련 분쟁(authorship disputes)이 빈번하게 일어나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저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을 저자로 올리거나 저자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을 저자에서 제외’하는 것이 연구자에게 공정한 업적 배분이 아니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작년 말 언론을 통해 제기돼 현재 우리나라 연구윤리 분야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교수 자녀의 논문 공동저자 문제’는 공동 저자가 교수의 중·고등학생 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중·고등 학생이 해당 논문에서 저자로서의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역할을 제대로 했느냐에 있다. 따라서 이번 실태 조사에서 자녀를 공동 저자로 올린 교수가 속한 각 대학에서는 저자자격(authorship)에 대한 국내외의 보편적인 가이드라인과 해당 연구 분야의 합리적인 기준에 근거해 공정하게 검증을 해야 한다. 만일 교수의 미성년 자녀가 해당 논문에서 저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그 자녀가 대학 입시 등에서 이익을 받도록 하기 위해 저자로 올려졌다면 이는 부당한 저자표시에 해당된다.

교육부는 미성년 자녀를 자신의 논문에 공동 저자로 올린 교수들에 대해 각 대학이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여, 만일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가 드러날 경우 징계, 사업비 환수와 더불어 대입에 활용됐는지를 확인해 입학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을 개정해 미성년자가 논문에 포함될 경우 소속기관과 학년 또는 연령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학계의 자체적인 점검 시스템을 강화함은 물론, 연구윤리를 강화하기 위한 중장기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가 명백한 위법행위이며 학문의 발전과 건전한 연구풍토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는 교육부가 이와 같은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 것은 현시점에서 필요하고도 적절한 조치로써 연구자가 연구윤리를 위반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을 엄단하여 연구활동에서의 진실성과 책무성을 확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연구윤리 확립을 위해 대학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하고 스스로 자기 개선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학은 연구윤리 확립의 주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선제적인 노력을 했다기 보다는 표절, 중복게재, 데이터 조작 등 연구부정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여론의 질타에 등떠밀려 어쩔 수 없이 사후처리를 위한 대증적 반응을 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학의 자율적인 연구윤리 확립 시스템 구축도, 효과적인 연구부정행위 예방을 위한 연구윤리 교육도 체계적이지도 않고 미흡한 실정이다. 연구윤리 위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도적인 노력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교육부가 지시에 따라 소극적으로 접근하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연구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의 초석이 되고 있는 21세기 고도의 지식정보화 및 4차산업 시대에 연구윤리를 준수한 연구의 결과만이 인정받고 진정으로 가치를 발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윤리는 법처럼 외부에서 강제하고 강력하게 처벌을 한다고 해서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와 연구 공동체가 바람직한 연구 수행을 위한 규범을 만들고 자율적으로 지켜나갈 때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연구윤리의 확립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마련과 지속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의 중심에는 당연히 연구자와 대학이 있어야 한다.

연구자와 연구 공동체가 정직하고 책임 있는 연구를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가 모든 것을 다 해주길 바라고 기대만 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부가 유지해 온 톱다운(top-down)과 바텀업(bottom-up)이 조화를 이룬 ‘대학 자율의 연구윤리 확립 기조’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면서 지속될 수 있다. 향후 교육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연구윤리확립 방안 마련을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안이 포함된다면 각 대학의 연구부정행위 예방 활동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연구윤리확립에서 중요한 것은 사후 검증 및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있으므로 각 대학에서 학문 분야별 연구윤리(교육) 전문가를 확보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교육부가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력을 양성을 해야 한다.

둘째, 대학의 체계적인 연구윤리 활동의 활성화와 공정한 연구부정행위 검증을 위한 연구윤리 전담 부서 설치 및 연구윤리 업무 전담 실무자(Research Integrity Oficer, RIO) 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국가 차원의 연구윤리 정책 수립을 위한 종합적 연구, 대학 연구윤리활동 지원과 모니터링, 연구 현장의 연구윤리 고민에 대한 상담, 연구윤리 정보 및 교육자료 제공, 연구부정행위 검증의 최종 심급 등의 역할을 수행할 ‘연구윤리정책연구원’(가칭)의 설립(만일 이것이 중단기적으로 어렵다면, 현재의 연구윤리정보센터(www.cre.or.kr)의 기능 확대)이 요청된다.

넷째, 이러한 다양하고도 필요한 연구윤리확립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는 바, 대학의 연구윤리확립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부 차원의 충분한 예산 확보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대학 자체에서도 필요한 예산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수 논문에 미성년 자녀의 공동 저자 등록과 관련한 부당한 논문저자 의혹 이슈를 계기로 연구자는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연구윤리의 가치나 규칙을 위반하고서는 절대로 어떤 부귀와 명예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각 대학에서는 자율적이고 보다 선제적인 연구윤리확립을 위한 노력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책임 있는 연구 수행의 문화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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