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명지전문대학 교수

▲ 김현주 교수

봄에 내리는 눈을 춘설(春雪)이라고 한다. 올해에는 꽃이 피는 3월에 눈이 내려서 춘설의 느낌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진한 분홍빛의 매화 꽃 위에 내린 눈은 한 편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눈이 많이 내려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눈은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고 따스하게 하는 자연의 선물과도 같다. 적당히 눈이 내려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행복한 느낌이다.

어린 시절에는 눈이 오면 마냥 기뻤다. 아버지와 같이 눈사람을 만든 것, 친구들과 같이 눈싸움을 한 것, 어떤 때는 동네 형들을 따라 다니면서 눈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눈은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눈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눈이 오면 바로 제설제를 뿌린다. 밤새 내린 눈을 아침에 보면 하얀 눈이 아닌 제설제와 제설차의 힘에 의한 검은 회색의 도시형 눈이 있다. 그나마 내린 눈을 하얗게 보려면 조금 멀리 산을 찾아가야 한다.

아프리카에도 눈이 올까? 킬리만자로에 가면 만년설이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눈이며, 산꼭대기의 눈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산이 하얀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기뻐하고 흥분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기상이변으로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린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아프리카에는 눈이 오지 않는 곳이 더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눈을 만난다면 어떨까?

몇 해 전, 케냐의 빈민촌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아이들과 만나서 하는 일은 하루 종일 같이 뛰어놀아 주는 것이다. 찾아가는 사람들이 뭔가 특별해서 찾아가는 듯한 행사나 의식은 없다. 그곳 아이들에게 방문자는 멀리 있는 나라에서 자신들을 찾아준 친구이자 후원자다. 아이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나면 무리를 지어 뛰어논다. 처음 만나는 이방인이지만 같이 손잡아주고 놀아주면 아이들은 아주 빨리 마음의 문을 열고 이방인을 친구로 생각한다. 언어가 달라도 몸짓과 눈짓이 아이들의 마음을 통하게 한다. 동행한 젊은 청년이 가방을 뒤적이더니 무엇인가를 꺼낸다. 스프레이 눈이다. 눈을 맞으면서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아른거린다. 한국에서는 파티에서 혹은 결혼식장에서 자주 쓰이는 스프레이 눈이다. 한국에서 보는 겨울의 눈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스프레이 눈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큰 기쁨과 감동을 주는 선물이었다.

겨울이면 쌓이는 눈,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스프레이 눈은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고 흔해서 별로 감동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스프레이 눈 하나가 커다란 감동이었다. 그날 스프레이 눈을 맞은 아이들은 어쩌면 평생 동안 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지낼 것이다. 그리고 눈을 맞고 싶어서 한국으로 오고 싶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흔한 작은 소품이 아이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우리에게 조금은 많은 것들. 어쩌면 너무 많은 것들. 그래서 소중함을 모를 때가 많은 것들이 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나누면서 살면 어떨까? 우리에게 풍족해서 남는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멀리 아프리카까지 보내지 않아도 된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너무 많다. 언젠가는 우리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눔 운동을 펼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연말이나 특정한 때에 성금이나 기부금을 내는 것도 좋지만 모든 대학에서 상시 나눔을 실천하면 어떨까? 무엇인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연말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눠주는 삶 속에서 얻는 행복의 시간 속으로 젊은이들을 초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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