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근 서울연구원 서울공공투자관리센터 부연구위원

예비타당성조사(아래 예타) 제도가 시행되면서 신규 국가재정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타당성조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민간업체가 수행한 타당성조사의 결과는 대부분 긍정적인 반면, 공공기관(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서울연구원 등)의 예타 결과는 전체 조사사업의 3분의 1 이상이 부정적일까?

전문성의 차이가 없진 않겠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기관의 독립성 유무다.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부서로부터 조사비를 지원받는 민간업체와 달리, 자체 예산이나 출연금으로 예타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은 조사의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산의 독립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인사권의 독립인데, 과연 과학기술분야 공공기관들의 인사권 독립은 보장되고 있을까? 최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1년 6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사퇴했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도 2년의 임기를 남겨두고 사퇴했다. 

기초연구분야 과제의 선정, 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연구재단과 대형신규 연구개발사업의 예타를 총괄하고 연구개발사업을 사후 평가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기관장들이 연이어 중도 사퇴하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감사하고 얼마 안 있어 기관장이 사퇴하는 패턴까지 똑같은데, 기관장들이 하나같이 중대 과오를 저질렀을까? 기관장들이 물러날 정도의 과오를 저질렀다면 산하기관 관리에 책임이 있는 과기정통부도 적지 않은 책임을 져야 했을 텐데, 그런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개인 업무 수행 시 책임과 권한(Role and Responsibility)이 중요하듯, 기관운영 시 독립과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사권과 예산권의 독립 없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말 그대로 모순이다.

“예타 담당자와 자문위원을 한번 교체해 볼용의는 없습니까?” 

이 질문은 본인 지역구에 유치하고자 하는 xx센터에 대한 예타가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자,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예타 총괄기관 기관장에게 한 질문이다.

다행히(!) 기관장은 “그동안 저희가 예타를 별 무리 없이 수행했고,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담당자와 자문위원을 교체한 사례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해당 사업의 예타는 수차례 국회에서 자료를 요청받고 평균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진행됐을 뿐, 끝내 ‘미시행’으로 결론났다.

이처럼 총괄기관이 전문성을 갖고 예타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국회(정치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웠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는 공공기관들에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한 예산권 및 인사권(의 자율성)을 제대로 보장해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럼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까?

우선 산하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공무원은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휘두르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나 권력형 갑질 사건은, 모두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휘둘러온 우리 사회 적폐의 결과물이다. 산하공공기관을 관리하는 공무원 역시 자신들이 책임 없이 권한만 행사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기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공공기관 임직원의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청와대, 국회, 정부 등 권력기관에 ‘Yes’만 하면서 독립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청탁금지법에서 부정청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만큼 권력기관들의 부정한 요구를 과감히 거절해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형식상으로는 ‘잘 봐 달라’ ‘긍정적인 면은 없는지 봐달라’ 등의 부탁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법령을 위반해서라도’ 또는 ‘법령에 따라 부여받은 권한을 벗어나서라도’ 처리해 달라는 의미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라면 청탁금지법상 부정청탁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한다. 기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부당한 요구는 과감히 거절하는 공공기관 임직원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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