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본지 논설위원/성균관대 대학혁신과 공유센터장

지난 8년 동안 대학교육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던 ‘대학자율역량강화(ACE+)사업’이 폐지된다고 한다.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 개편계획’에 따르면 산학협력(LINC+)과 연구지원(BK21+)을 제외한 모든 특수목적사업들이 ‘일반 재정지원 사업’으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진 특수목적사업들이 교수들을 사업 계획서 쓰는 사람으로 전락시켰다는 불만이 가져온 후폭풍으로 보인다. 정부가 돈으로 대학을 길들인다는 의구심도 명분을 줬다. 문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 생긴다. 연구 성과 중심으로 줄을 세우는 대학 평가와 교수업적 평가 관행이 유효한 가운데, 학생과 교육에 대한 대학의 관심과 투자를 유도해온 최소한의 마중물마저 폐기했다. 정부의 균형적인 감각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동안 ACE+사업은 교육이야말로 대학의 핵심사명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대학 구성원의 에너지를 교육에 모으는 역할을 했다. 잊혔던 건학이념과 인재상을 재조명하고 학생 중심 교육과정 개편과 교육의 질 관리를 본격화한 것도 ACE+사업을 통해서다. 다른 사업들이 일부 학과나 특정 집단에 집중 투자했다면, 이 사업은 대학의 교육 시스템 전반을 혁신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정부는 ‘잘 가르치는 대학’이라는 지향점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 사업목표와 계획은 대학에 맡겼기 때문에 대학들이 좋아하는 사업이라고도 한다. 정부 사업 중에서 이처럼 긍정적인 성과를 많이 창출하고, 대학들이 정서적으로 좋아했던 사업이 있었나 싶다.

다행스럽게 사업 폐지를 눈앞에 두고 긍정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대학인들 사이에서 ACE+사업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 또한 대학 사회에 공유와 협력의 힘을 길러준 ACE+사업의 성과다. 그렇다면 ‘명목상’ ACE+사업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앞으로 ‘일반 재정지원 사업’을 수행하더라도 ACE+사업이 뜻했던 바를 계속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대학의 몫이다. 대학교육의 혁신을 위한 노력과 투자는 적어도 8년 이상 지속될 때 진정한 체질 변화와 지속가능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 ACE+사업을 진행하다 중단하는 대학들은 학부교육 발전동력을 최대한 유지해야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 교육부도 대학과 사업 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ACE+사업이 남긴 교훈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일반 재정지원 사업이 내세우는 ‘대학혁신’의 핵심은 ‘대학교육 혁신’이다.

둘째, ACE+사업으로 촉발된 ‘교육의 질 관리’ 노력이 대학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지속돼야 한다. ACE+사업이 가져온 성과 중 하나는 대학들이 체계적인 방법으로 교육의 질 관리를 도모했다는 것이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생산되는 다양한 학생 데이터와 대교협 ‘학부교육 실태조사(K-NSSE)’처럼 전국 조사를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대학교육의 질 제고와 학생의 성공적 대학 생활을 위해 피드백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셋째, 글로벌 ACE 사업을 제안한다. 그동안 ACE+사업으로 발전시킨 한국 대학의 혁신 모델을 수출하자는 것이다. 아세안이나 중앙아시아 국가처럼 고등교육 발전에 관심이 큰 나라를 중심으로 전략적인 진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대학이 파트너십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교육수출 사업이 될 수 있다.

넷째. ‘ACE대학 협의회’가 보다 발전적인 역할을 하면서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대학들이 서로 소모적 경쟁을 벌이기보다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교류하고 대학별 여건과 환경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상생토록 하려면 이를 이끌어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 주도 하향식(Top-down) 접근보다 대학에 의한 상향식(bottom-up) 접근이 효과적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제고와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식과 노하우를 쌓고 발전시키는 것은 오래 걸린다. 이를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잘 가르치는 대학 만들기’를 표방하는 ACE+사업을 통해 학부교육 혁신 모델과 노하우가 많이 축적됐다. 잠시 쉬어가더라도 명맥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조만간 포스트 ACE사업을 논의할 날이 올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