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하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착잡한 6개월이었다. 지난 10월에 시작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가 두 번의 연장 끝에 4월에 끝났다. 연구를 시작한 이후에도 하루가 다르게 대학원생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는데, 전에는 단지 분노하거나 한숨과 함께 넘겼을 사례들이 이제는 책임지고 응답해야 하는 요청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연구를 진행하면서 응답해야 할 대상은 각각의 인권침해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생 인권침해 문제는 최소 국내 대학원 규모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여 년간 계속해서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개별 사건이 아닌 국내 대학원이 문제였고, 이에 대해 응답해야 했다 .

지난 착잡한 20년을 만든 건 착한 대학원생들과 착한 교수들이었다. 착한 대학원생은 인권을 침해당해도 참았다. 참지 못한 대학원생은 더 이상 대학원생일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난 대학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대학에서 착한 대학원생들은 자조할 뿐이었다. 한편, 착한 교수들은 대학원생의 인권을 침해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일이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가끔씩 “난 아니야”라고 항변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이 변하지 않자 대학원생들은 대학 밖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기자를 만났고, 변호사를 만났으며,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만났다. 여론에 호소했고, 총장 또는 교수를 사법기관에 고발했으며, 정책을 제안하고 법률을 발의했다. 대학원생들이 대학의 변화를 요청했을 때, 응답은 대학이 아닌 대학 밖에서 들려왔다. 역설적이게도 대학원생들은 대학에 남기 위해 대학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교육부가 발주하고 필자가 참여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는 대학원 담당 조직이 따로 없는 교육부의 손을 거쳐 법률 등의 형태로 정책이 돼 대학에 적용될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그 정책이 어떤 모습일지, 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다만, 정부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대학이 진정으로 변하기 위해선 대학 안에서 대학 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들이 어쩔 수 없이 대학 밖에서 미투(Me too)를 외쳐왔다면, 이제는 교수들이 대학 안에서 나설 차례다. 지면을 빌려 대학원생의 인권 보호, 더 나아가 인권친화적인 대학 만들기에 동참하고자 하는 교수님들께 조금 특별한 위드유(With you) 운동을 제안한다.

최근 대학가에서 공표되는 ‘대학원생 권리장전’ 은 헌법과 국제인권규범 등 분명한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이른바 공인된 대학원생의 권리를 명시한 문서다. 위드유 운동은 이 권리장전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교수들이 권리장전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명시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겠다는 다짐을 공표하는 것만으로도 대학은 크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권리장전에는 총 12개 항목이 있는데, 이를 꼭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권리장전에 동의하지 않는 항목이 있거나 보다 명확히 하고 싶은 항목이 있을 경우 그에 대해 간략한 견해를 작성해 공유하면 된다, 지도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공유하되, 더 나아가 이를 교수님 본인 혹은 연구실 웹사이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는 인권침해를 당했거나 당할까 두려워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동행의 표시가 될 것이다. 대학원생들을 다시 대학 안으로 불러와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보다 서로 존중하는 대학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 그간 공론화되지 않았던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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