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국내 연구진이 나노과학의 난제로 꼽히던 거울대칭 무기 재료 제작에 성공했다. 해외 저명 학술지 <Nature(네이처)>도 19일자 표지논문에 게재한 데 이어, 별도 섹션을 통해 논문의 의의를 상세히 설명했다. 연구진이 무기 입자를 합성한데 이어 그 원리도 규명함으로써 나노 분야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서울대(총장 성낙인)는 19일 남기태 교수(재료공학) 연구진이 “거울상 대칭구조를 금 나노 입자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포항공대(POSTECH) 노준석, 김욱성 교수, LG디스플레이연구소 장기석 책임연구원 연구진과 연구를 공동 수행했다. 공동 1저자는 서울대 이혜은 박사, 박사과정 안효용 대학원생.

거울 대칭상이지만 겹쳐지지 않는 특성을 ‘거울상 이성질’ 또는 ‘키랄성(Chirality)’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오른손과 왼손의 차이다. 생김새가 동일해 보이지만, 왼손용 장갑을 오른손에 착용할 수는 없다. 단백질의 기본 성분인 아미노산도 키랄성이다. 키랄성 물질은 전기 에너지를 구성하는 전기장, 자기장이 특정한 방향으로 진동하는 ‘편광’에서 중요하다. 한 물질을 ‘-’, 다른 거울상 물질을 ‘+’라 하자. 키랄성 물질이 편광을 받으면, 한 물질은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킨다. 반대편 물질은 반시계방향으로 돌린다. 이 같은 키랄성 물질은 지금까지 유기물질(탄소화합물)에서만 발견됐다.

만약 편광 물질을 무기 재료에 구현할 수 있다면 전자공학 등 분야의 전기가 될 것이다. 촉매, 광학 재료, 나아가 편광을 이용한 투명망토를 제작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도 이번 연구를 주목한다. 이 분야 권위자인 스페인 생체재료 공동연구센터(CIC biomaGUNE)의 루이즈 리즈-마르산(Luis M. Liz-Marzán) 책임연구원 등은 <네이처>에 “빛의 회절을 제어할 수 있는 소재와 장비를 만드는 데 획기적인 계기를 열어준 성과”라고 적었다.

연구진은 아미노산 중합체 펩티드(peptide)를 모사해 나노 입자를 만들어냈다. 한 변이 약 100나노미터(nm)인 정육면체의 각 면에 시계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뒤틀린 구조체가 존재하는 형태다. 회전하는 빛에 반응하는 정도를 측정한 결과, 생체 분자 단백질의 약 100배 크기의 키랄성 입자임을 입증했다. 

▲ 연구진이 최초로 개발한 거울 대칭상의 금 나노 기하구조. 펩타이드를 이용하여 세계 최초로 구현된, 거울상 기하 구조를 가진 금 나노 입자의 모형(왼쪽) 및 전자현미경 사진.(자료=서울대)

또 이 입자가 눈에 보이는 구조(가시광 영역)라는 데 착안, 광학 실험을 통해 다양한 색채를 구현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특히 펩티드 서열 구조, 키랄성이 그대로 무기 재료 표면에 반영될 수 있음을 최초로 발견한 것도 주목받는다. 생체 물질을 모사해 무기 물질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규명한 것이다.

남기태 서울대 교수는 “디스플레이를 위한 새로운 개념의 가시광선 편광소재로 적용할 수 있다”며 “무기재료, 키랄성 생체 분자의 상호 작용 현상을 규명하는 학계의 노력을 획기적으로 진보시켰다. 향후 거울상 선택성 촉매 개발의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준석 POSTECH 교수도 “거울상 기하 구조체는 광회전 선택성을 가지고 있다. 이후 편광제어 광소자, 구조 색, 음의 굴절률 소재, 투명망토 및 바이오센싱 등의 분야에서 핵심 기술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소재 디스커버리 사업 'd-오비탈 제어 소재 연구단(단장 남기태), 글로벌프론티어사업 멀티스케일에너지시스템연구단(단장 최만수)과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단장 이학주), 선도연구사업 광기계기술연구센터(단장 강신일)'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오른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서울대 남기태 교수, 포항공대 노준석 교수, 서울대 박사과정 안효용(제1저자), 서울대 이혜은 박사(제1저자). (사진=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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