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LS산전 전력연구소 책임연구원

오늘날 우리는 인류문명이 만든 다양한 이기의 정점에 살고 있다. 17세기 와트의 증기기관에서 출발해 스마트폰에 이르는 산업화의 산물들은 인류문명의 발전을 궁극의 경지로 이끌어왔다. 여기에 정보혁명,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이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부가가치는 예측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변혁의 시대 속 대한민국은 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타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뤄져 고도 제조업사회에 진입한 나라다. 경공업에서부터 IT산업까지 우리가 이뤄놓은 산업적 가치는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선진국과 동등한 산업 인프라를 가지고도, 21세기를 이끌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성장정체는 추격자(Fast Follower) 개발방식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추격자 개발방식이란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축적의 시간》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선진국 기술과 제품을 복제하거나, 유사하게 변경해 동등 성능의 제품을 빠르게 획득하는 개발방식을 지칭한다. 추격자 개발방식의 주요 프로세스는 선진 기업들의 개발품이나 기술 관련 자료를 빨리 이해하고, 관련 부품의 생산기술을 빠르게 국산화시키는 것이다. 상기 개발방법은 짧은 시간 내에 극대화된 기술능력을 뽑아낼 수 있지만, 온전히 새로운 가치에 부합하는 기술에 대응능력이 없는 인력구조를 만들어내는 단점이 있다. 21세기 기술의 융합이나 새로운 원천기술에 대한 대응에 있어 모방능력만을 가진 엔지니어 계층을 가진 우리로서는 주도적 성장을 이뤄낼 수 없다.

기존의 추격자 개발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제조업 구조로 나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은 균형감각이 확보된 ‘참엔지니어’ 양성에 있다. 여기서 균형감각이란 이론적 지식과 경험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창의성 있는 물품을 현실화하기 위해 개발자는 도면 작성의 개념과 가공, 재료와 같은 학문의 이론과 실제를 목적에 따라 변형·창조하는 과정을 능동적으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균형감각이 함양된 참 엔지니어를 길러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능동적 문제해결능력 함양을 위한 융합형 교육으로의 전환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예를 들어 옴의 법칙(Ohm’s Law, V=IR)을 가르치면서 수학적 기호나 문제풀이에 집중한 나머지 법칙의 내면적 진의인 '전기저항 사이의 전류가 흐르기 위해서는 전위차가 필요하다' 는 설명과 그에 관련된 산업관련 예제들을 제대로 전달하려 한 노력이 있었던가?

형식적이고 단편적인 교육방법에서 탈피하기 위해, 21세기형 대학고등교육은 엔니지어가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을 제시해야 한다. 관련 지식에 대한 키워드와 기본지식을 제공, 피교육자 대상들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프로젝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프로젝트 방식에는 필연적으로 학생들이 문턱이나 장애를 만난다. 현실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대학 강단에도 이를 도와줄 수 있는 경험 있는 연결자(Linker)인 일선 현장엔지니어가 다수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아야 것은 엔지니어가 접하는 참고자료와 교수법의 진정성 있는 변화다. 보기 어려운 수식으로 가득 찬 이론서적과 오번역된 참고서들이 우리 주변에 혼재돼 있다. 석·박사 학위라는 단편적 수월성 교육을 마친 교원들이 자신의 높은 지식수준을 일방적으로, 지식소비자의 수준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르치고 있다. 잠재력을 가진 이공계 학생들이 참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접근 문턱을 높이는 행위이며, 21세기 한국 제조업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는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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