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공학)

요사이 논문을 투고하라는 해외 학술지들의 홍보성 메일을 수시로 경험하는 것은 필자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신이 근래 발표한 논문이 훌륭하다’며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후속 논문을 투고하라고 유혹하고 있다. 쉽고 빠른 출판을 앞세우지만 논문을 invite하는 것도 아니고 내면에는 높은 발간료가 숨어 있기도 하다. 주로 off-line 저널을 발간하던 해외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open access 저널을 발간하면서 생존을 위해 또는 세 확장을 위해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모습이다. 국제적 학술출판사의 대표에 엘스비어(Elsevier)가 있다. 1880년에 설립돼 란셋(Lancet)과 네이처지(Nature) 등을 발간하면서 명성을 쌓아왔는데,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현재 2500개의 저널과 3만 권 이상의 e-book을 출판하고 있는 거대기업이다. 2017년도 수익이 1조4000억원에 달한다는데, 이렇게 학술정보유통 사업이 꽤 큰 돈벌이가 되는 모습에 너도 나도 e-journal을 만들고 사업에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되고 있는 학술지는 얼마나 될까? 2018년 4월 25일 기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통계에 의하면 국내 발간 학술지는 5440종이다. 이런 수치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하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이 이 수치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12월의 5051종에 비해 약 400종이 증가한 수치다. 2년 남짓한 기간에 말이다. 이 현상은 앞서 얘기한 세계적인 트렌드와는 다른 얘기다. 해외에서는 출판사들이 주도하는 일임에 비해, 국내에서는 학자들이 자신의 논문발표를 쉽게 하기 위해서 학술지를 더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지식과 정보를 동료 학자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논문 발표를 한다. 학술지 증가는 그런 기회를 늘린다는 면에서 일견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본인이 속한 학회의 학술지를 폐간한 바 있다. 선배 학자들의 원망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도 잘한 일이라 스스로 평가한다. 회원들이 논문의 국제적 노출이 훨씬 용이한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상황에서 굳이 학술지를 유지하기 위한 일부 임원들의 수고와 희생이 너무 컸던 것은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렇게 어렵게 모신(?) 논문은 peer review를 엄하게 받지 않은 채 발표되기 때문에 그 진실성과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렇게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 잘 읽힐 리도 없다. KCI의 통계를 보자. 학술지 인용지수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선 2010년부터 2016년 사이 학술지들의 자기인용을 제외한 피인용수는 이공계의 경우 농수해양학계열에서 평균이 0.26에서 0.27로, 자연계열에서는 0.25에서 0.29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고 그 수치 자체가 의미 없을 만한 수준이다. 이는 학술 정보가 주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사회과학의 경우에 0.52에서 0.78로 50% 이상 증가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 통계는 재단등재지의 경우이니 이보다 더 많은 이공계의 미등재 학술지의 인용도 수준은 훨씬 낮을 것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의 학술지들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은 학술지 부실과 부정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에서는 요즘 과학학술지들을 대상으로 한 학술지발간 지원사업의 학술지평가작업을 하고 있다. 이 학술지 평가에서 피인용도에 대한 평가가 세분화되면서 강화되고 있는데, 바람직한 방향이다. 비록 과학계열의 연구재단등재지에 국한된 것이지만, 이는 국내에서도 학자들 간 그 정보가 제대로 이용되는 학술지만이 살아남고 존중받는 실질적인 학술풍토 구축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에 힘을 실어주자면, 대학들에서도 일정한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학술정보유통의 기능이 미미한 학술지가 퇴출되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실속 없는 일에 낭비되는 학계의 에너지와 경제적 자원을 모아 실질적으로 국가 과학경쟁력 강화를 이루는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부수적으로 얻는 것도 있다. 많은 재단 등재지들이 open access로 공개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좋은 학술정보를 다루는 국내학술지들에 대한 국제적 인정이 이뤄질 수 있고, 동시에 이들을 출판하는 국내출판사의 국제적 명성도 함께 올라가게 될 것이다. 사양일로의 국내 출판업계에서 엘스비어와 같이 황금알을 낳는 출판사가 생겨날 일을 우리 학계가 가능케 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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