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풀리면서 교류협력 재개 박차…총장, 강원대‧전남대‧한동대 방문

학생 일반고서도 선발, 경영학과서 시장경제 배우기도 
진로는 北 정부서 결정 “못 가야 김일성대 교수”
작년 의대, 치대 설립했지만 “자금경색에 건축 어려움”

▲ 2014년 평양과기대 박사과정(박사원) 졸업식.(사진=문규성 교수 제공)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전례 없는 속도로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호전되는 가운데, 북한의 평양과학기술대 전유택 총장이 지난달 남한을 찾았다. 전 총장은 전남대, 한동대, 강원대를 차례로 찾아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 후, 지난 1일~2일 사이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한에서 평양과기대 후원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까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겠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중국에는 평양과기대의 ‘쌍둥이 대학’이 있다. 연변과학기술대학이다. 우리 국민인 문규성 연변과기대 명예교수는 “연변과기대가 낳은 대학”이라며 “다국적 교수님들이 연변과기대에 재직하고 있어, 평양과기대와 교수를 공유하고 필요한 과목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평양과기대는 연변과기대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중국 교수를 받아 한 학기동안 절반은 평양, 절반은 연변에서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공동 과목을 개설해 운영한다. 문규성 교수를 통해 평양과기대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알아봤다.

■ 시작은 양국 정부가, 개교는 민간 후원으로= 평양과기대는 북한의 요청에 의해 설립됐다. 최초의 합작대학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 사립대가 있을 수 없지만, 미국과 남한 자본이 투자돼 ‘북한 유일의 사립대’라 칭해진다. 2000만파운드(약 354억원)의 기금이 투자됐다. “남북공동으로 과학기술, 경영분야 인력 양성을 통해 북한 국제화와 경제 자립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평양과기대는 대동강변 언덕, 평양시 락랑구역 승리동에 위치한다. 부지 넓이만 100만제곱미터다. 북한 교육성은 2001년 3월, 우리 통일부는 같은 해 6월 협력사업 승인을 냈다. 운영에 필요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 2002년 6월 착공했지만, 남북관계가 변화하면서 양국 정부 지원은 끊어졌다. 우리 정부도 2006년 5월 남북협력기금 10억원을 지원했으나 그해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지원을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 2009년 7월 준공식을 갖고 2010년 10월 25일 학부, 대학원 첫 강의가 시작됐다. 미국 교포와 한국 기독교계의 도움이 있었다. 현재 정보통신공학부, 농생명공학부, 경영학부, 공공보건학부가 개설됐으며, 작년 치과대학과 의과대학이 신설됐다. 이름이 과학기술대라 해도, 꼴은 사실상의 종합대학이다. 재정과 학사 운영은 전부 외국에서 도맡는다. 

▲ 2014년 평양 현지에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촬영된 평양과기대 학생들.

■ 2015년부터 여학생, 일반고 신입생 확대 = 평양과기대는 2014년 개교 3년 7개월만에 첫 졸업생 44명을 배출했다. 지금까지 520명을 졸업시켰다. 신입생은 북측에서 선발한다. 김일성종합대, 김책공업대, 평양컴퓨터기술대학 등에서 1~2년 재학한 학생들 중에서 수재들을 선발한다. 최근 들어서는 일반고 학생 중에서도 선발되고 있다. 소위 핵심계층에서만 선발된다고 알려진 것과 다른 셈이다. 이들은 1년간 영어 수업을 집중적으로 들은 뒤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2015년 대북전문매체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김진경 당시 평양과기대 총장은 “지난 3월 150명의 신입생 중 10명의 여학생을 입학시켰다”고 밝혔다. 평양과기대 최초의 여학생들은 모두 북한의 영재학교 제1고등중학교 졸업생이다. 고등학교 졸업생을 곧장 진학시킨 첫 사례는 물론, 첫 여학생 입학 사례였다. 평양과기대는 여력이 되는대로 여학생 입학을 늘리고, 지원체계도 확충하겠다고 당시 밝혔다.

졸업 후의 진로도 북측에서 결정한다. 문규성 교수는 “제일 못 가는 졸업생이 김일성대 교수로 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2015년에는 남미 유학생을 처음 배출하기도 했고, 중국으로도 간다. 대표적인 곳이 연변과기대다.

평양과기대는 공동총장제로 운영된다. 전유택 현 총장은 재미교포다. 북측이 임명한 박상익 총장과 함께 한다. 교수는 모두 다국적 외국인들로 구성돼 있다. 문규성 교수는 “북측이 남한 국적의 교수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허가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는 평양과기대 미국인 교수들의 방북을 승인하지 않았다. 교수 46명의 방북 신청이 모두 거부됐다”고 밝혔다. 현재 평양과기대는 미국 국적을 제외한 외국인 교수 충원에 주력하고 있다.

▲ 2014년 졸업 후 중국 연변과기대를 찾은 평양과기대 학생들.(사진=문규성 교수 제공)

■ 대북제재 대상 아닌데 자금경색…이제는 바뀔까 = 재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하면 대학 내에서 함께 숙식해야하는 사람만 8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아직 양국 정부의 재정지원은 없다고 한다.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유엔 대북제재로 송금과 지원이 통제되고 있어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평양과기대는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금융권이 송금을 꺼리기 때문이다.

전유성 총장은 지난 2월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돈이 끊겨서 평양과기대 의과대학 청사 건설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식사를 위한 식자재 구매 자금은 외국인 교수들이 평양과기대로 들어가면서 현금을 들고 간다고도 했다.

과거 평양과기대는 얼어붙은 북미관계의 상징이기도 했다. 북한에 억류중인 한국계 미국 교포 3명 중 두 명이 평양과기대 초빙교수 내지는 기술 보급을 위해 북한을 찾았다가 ‘반공화국 적대혐의’로 체포됐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지난 3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법무팀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김정은을 충분히 이해시켜 3명의 억류된 미국인이 '오늘' 풀려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평양과기대와 학술교류를 체결한 적이 있던 대학은 전남대, 강원대, 한동대를 비롯해 포항공대(POSTECH)과 고려대, 한국정보통신대학교(현 KAIST), 단국대 등 10여개다. 정부출연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도 협정을 맺었다. 전유성 총장이 남한을 찾은 이유도 이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사전 절차로 여겨진다. 평양과기대가 남북대학 교류의 물꼬를 틀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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