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이 중차대한 시기에 웬 ‘주사파’
[수요논단] 이 중차대한 시기에 웬 ‘주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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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섭 본지 주간
▲ 최용섭 본지 주간

‘주사파’ 참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 ‘주사파’는 ‘주체사상파’의 준말이다. 이른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세력을 일컫는 말인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판문점 선언에 김정은과 ‘주사파’간에 이면합의가 있다”고 치고 나옴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홍 대표의 말에 정치적 의도가 있겠지만 정세의 중차대함에 비춰 걱정이 앞선다.

미소냉전기에 분단국가인 동서독과 남북한 통일은 요원한 일로 여겨졌다. 특히 전범국이자 강력한 서방국가인 서독 주도의 통일은 남북통일보다 더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 우세했다. 분단을 결정한 강대국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동서독 통일은 갑자기 이뤄졌다. 구(舊)소련의 개혁지도자 고르바초프(M. Gorbachev)의 등장은 분단을 규정한 냉전체제의 해체를 가져왔고 착실히 통일을 준비해온 서독의 지도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동서독 통일 전문가들은 미소중심의 동서 냉전체제가 해체되지 않았으면 동서독 통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란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덧붙여 서독의 일관된 대 동독정책 이른바 동방정책(Ostpolitik)이 지속되지 않았다면 통일의 과정이 그렇게 순조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은 1989년의 세계사적 격변기를 통일로 가는 전환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했다.

필자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날 서베를린에 있었다. 서베를린 시내는 장벽을 넘어 온 동베를린 시민들로 넘쳐났다. 감격적이었다. 동시에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동서베를린 시민들이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는 같은 분단국민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 이후 동서독은 통일이 됐고 남북한은 여전히 분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 선진 서독이 낙후 동독을 흡수하는 형태로 통일한 것이다. 남북한과 동서독의 분단상황은 다르지만 유사한 점도 많다. 그동안 남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군부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간정부가 들어섰다. 여야 간 정권교체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거리의 정치'는 사라지고, 정치투쟁 일변도의 1980년대 형 학생운동도 자취를 감췄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흡사 1980년대 후반 세계사적 격변기와 비견될 정도로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 정세의 근원적인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이미 해체된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 한반도인데 이 냉전체제를 걷어낼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골동품이 된 ‘주사파’가 다시 나온 것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거나 한가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동서독 통일을 가능케 했던 서독의 동방정책은 정파를 초월해 통일정책에 뜻을 같이한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통일이 남의 일인가, 바로 우리의 일이다. 적어도 이 과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 시대의 정치지도자들은 세계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경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사적 소명의식도 함께  갖춰야 한다. 한반도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다. 주변강대국들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자국의 이해 확장에 골몰해 그대로 두려고 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든 휴전협정의 한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는 이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민족의 통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의 문제를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 2018년도에 ‘주사파’ 논쟁을 벌여 모처럼 맞이한 호기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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