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도서관은 최신 정보를 제공해 대학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기본 시설이다.’

도서관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대학도서관 관계자들이 하는 말이다.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양한 전자기기와 인터넷을 통해 개인의 정보 생산과 공유가 가능한 최첨단 시대에 도서관만이 최신 정보의 제공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효율과 생산성을 전제로 하는 시대에 ‘기본’이란 이유로 존재나 지원을 당연시 하는 것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의 역량과 노력을 제외하고 도서관이 얼마나 존중받고 깊이 있는 정보 생산과 유통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것 또한 장담할 수 없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취업 문제가 당장 코앞인데 독서를 통한 교양을 운운하는 것도, 다양한 디지털 매체가 공존하는 시대에 ‘책’이 인격과 인문학 함양을 위한 절대적인 매체인 양 이야기하는 것도 불편하고 부당하게 생각될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만 있으면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시대에 교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서관에 일부러 발품 팔아가며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최근 대학도서관들 사이에 공간 개선을 위한 신축과 리모델링이 유행하고 있다. 도서관을 쾌적하고 편안한 북카페나 휴게실 같은 공간으로 꾸며 이용자들이 오고 싶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대학도서관 공간 개선을 위해 전국적으로 약 1조원 가까이 투입된 것으로 조사되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의 물리적 공간 개선이 대학도서관의 역할과 효용가치를 높이는 데 지속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창의적 교육을 위한 기초이자 삭막하고 황폐화된 관계로부터의 도피처여야 할 도서관이 정작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한 변화하는 시대에 발 빠르게 쫓아가지도, 전통을 폼 나게 유지하지도 못하고 있는 도서관의 현실이 안타깝다.

‘도서관은 대학의 필수 시설이다’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이다’라는 공허한 말들 이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쩌면 그것은 도서관과 사서의 노력으로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도서관은 존재의 타당성과 부재의 합리성 사이 어디쯤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가장 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대학의 도서관에 대한 시선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첨단 학술정보의 제공이 가능하고, 공통의 관심사와 협업을 위한 물리적 공간(maker space) 제공이 가능한 도서관을 제외한 채 대학 어디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준비를 위한 장소를 찾고 있는 것일까. 대학 내 어디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수교양이자, 학생들의 연구와 학습 그리고 평생교육을 위한 정보의 효과적인 검색과 활용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단 말인가.

외국의 한 대학도서관은 사서들의 정보수집 능력을 기반으로 취업 관련 글로벌 정보 수집과 창업 인큐베이터 공간 제공, 도서관 주도로 이뤄지는 진로와 관련된 연구 및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교내에서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진로, 취업, 창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및 캐나다의 많은 대학도서관들은 학생들에게 정보 탐색, 평가 및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정보활용 교육과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리포트, 보고서, 논문 등 학문적 글쓰기 교육을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국내 모 대학도서관도 ‘학술정보 활용 및 학문적 글쓰기 교육’을 정규 교양과목으로 개설해 전문사서가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대학 내 인력과 공간을 활용한 교양과목개발의 좋은 사례다.

이제는 도서관이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역할이 아닌 ‘교육과 연구를 분담’하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따스한 봄날 도서관 앞을 무심히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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