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조 동양미래대학교 교수

2017년 작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 역량개발실장으로 일하며 글로벌현장학습 사업을 운영 중이었다. 20개 조금 안 되는 꽤 많은 수의 국가들에 전문대학 학생들을 파견하고 있는 터였기에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에 – 고등직업교육과 관련된 부분만이 아니라 지진에서 테러까지 –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지냈다.

어느 날, 매우 안정적이어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캐나다(온타리오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에서 전문대학 교직원들이 파업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캐나다 대부분의 전문대학은 공립이며 주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파업의 상대방은 주정부였다. 파업 이슈는 파트타임 교직원 비율 축소, 임금 인상 등 재정 문제였다. 우리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 캐나다에서, 그것도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도 주정부를 상대로 파업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다양성이 포용되는 나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먼 나라의 조금 이상한 이야기일 수 있다. 캐나다처럼 잘사는 나라에서도 고등직업교육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 그로 인해 파트타임 교직원이 많다는 점, 급여가 잘 인상되지 않는다는 점 등 모두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이라서 동지애를 느낄 수도 있겠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학령인구 감소, 차별적 재정 지원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 전문대학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취업은 우리가 시키는데, 돈은 일반대학으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처음 만난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으로부터 우리와 다른 언어로 들을 때의 그 느낌, 외국 전문대학 관계자들과의 몇 마디면 무척이나 끈끈해진다.

여러 비슷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와 우리나라의 전문대학 간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전문대학이 공립이라는 점이다. 즉, 고등직업교육을 공적 영역인 주정부에서 책임지고 있다. 이것은 캐나다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단계 직업교육 대부분은 사립 전문대학에서 한다. 이 차이를 잘 드러내는 지표가 졸업률이다(우리의 유지율이라는 것의 반대편에 있는 지표와 비교해보자). 졸업률은 캐나다에서 전문대학 정보 공시에 사용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최근 캐나다 전문대학 졸업률은 80%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역량 기반의 교육을 진행하고, 역량이 입증될 때만 졸업시킨다. 과연 학생 등록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립 전문대학에서 가능한 일일까?

최근 고등직업교육을 포함, 직업교육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나타내는 교육부의 조직 개편이 있었고, 현재는 국가 차원의 직업교육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들이 직업을 갖고 관련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직업교육 부문의 사적 영역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의 책무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된 마스터플랜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공립인 캐나다의 전문대학들은 학생을 포함한 주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우리 국토 100배 면적에 4000만이 안 되는 인구가 거주하는 우리와는 환경적, 문화적으로 너무 다른 나라다. 전문대학은 공립으로 운영되고 있어 캐나다에서 잘 진행됐다고 해서 우리에게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해야 할 일도 아니지만, 캐나다 전문대학에서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 형성과 유지는 우리가 갈 길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문대학이 도움을 받고 기여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는 학생, 지역, 산업체(특히 해당 지역의) 등이다.

학생에 대해서는 물론 우리와 마찬가지로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학생이 조금 다르고, 대응하는 방법도 조금 다르다. 캐나다 전문대학의 25세 이상 학습자 구성비는 전체 학생의 3분의 1가량으로 우리나라 전문대학(2017년 기준 약 9%)과 큰 차이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전문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적기도 하고 평생교육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문대학 학생은 주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비슷한 또래의 비교적 동질적인 학생들이다. 과거에 비해 학생 저마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곤 하지만, 캐나다의 학생 다양성에 비교할 바 아니다.

내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모여 있는 30~40명 단위의 학생들을 보면 비슷한 듯 다르다. 주문식, 산업체 맞춤형, 또는 사회맞춤형 교육 등 다품종 소량 또는 주문생산에 가까운 교육 시스템이 전문대학에 도입돼 시도되고 있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여전히 대량생산 패러다임하에 있어 보인다.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요구를 파악하고, 학생의 수준과 목표 진로에 맞는 개별적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기존의 많은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 등 큰 변화가 예측되고 있다. 학벌 중심의 사회적인 분위기 등 전문대학에서 어떻게 손써볼 수 없는 여러 요인이 직업교육으로서의 평생교육 발전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새로운 직업 수요와 이직 수요 등 평생직업교육이 요구되며 국가적으로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은 현재의 전문대학뿐이다. 다양한 학생의 다양한 수준과 요구를 반영한 평생직업교육을 위해서는 학생과의 관계를 보다 유연한 것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포용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캐나다 전문대학이 산업체를 이해하는 방식은 “산업체에서는 (수강)시간을 기준으로 한 자격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증거를 찾고 있다”는 명제에 잘 드러나 있다. 이를 위해 산업체의 실제와 최대한 가까운 교육을 진행한다. 즉, 직접 해보는 응용 교육이야말로 최고 형태의 학습이다. 또 Co-Op 등의 실효성 있는 장기현장실습이 포함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응용연구로 불리는 현장 중심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도 활성화돼 있다.

▲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센테니얼 칼리지(Centennial College) (사진=센테니얼 칼리지)

우리나라 전문대학도 일반대학과는 달리 산업체와 더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교육과정 개발, 운영, 평가에 산업체 인사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학생들은 다시 산업체로 간다. 산업체와의 협력해 수업의 일환인 학생들의 현장실습도 진행한다. 교수들은 중소기업에서 맞닥뜨린 애로기술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우리나라 국가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은 전체 기업 중 99%, 전체 재직자 중 88%로, 그래서 9988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끔은 산업의 9988, 그리고 전문대학 졸업생들의 주요 취업대상인 중소기업들의 문제를 우리 전문대학에서 제대로 풀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중소기업들과의 관계 형성과 유지에 있어 각종 평가를 위해 형식에 치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럴듯한 선언보다는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형성·유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캐나다의 사례는 우리가 고등직업교육의 공공성과 국가의 책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학생들 개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관심과 관리, 산업체와의 실질적 관계 형성·유지는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학의 정체성과 역할 재확립을 웅변한다.

꽤 오래된 스스로의 질문이지만, 전문대학의 고객은 누구인가에 대해 전문대학은 다시 답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전문대학은 학생과 산업체 모두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의 에이전트다. 방송국이 광고주와 시청자 모두를 주요 고객으로 하듯, 그리고 양쪽 고객이 모두 만족해야 선순환을 이뤄낼 수 있듯, 학생과 산업체 모두의 기대 만족만이 전문대학 생존을 위한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수한 예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래가 우리 앞에 있다. 미래를 맞이하는 여건도 불비하다. 그리고 시급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전문대학의 본질로,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그리고 국가는 이에 응답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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