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대입개편특위 위원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시와 정시 비율을 두고 “일률적 비율을 제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대와 전문대는 감당이 안 된다. 전국적인 비율 권고는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학과 대학 정책을 획일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드러난 셈이다.

수시·정시 비율과 통합 문제는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안건으로 이송하기 전부터 대학가에서 우려를 나타냈던 사안이다. 수도권과 지방대, 일반대와 전문대 등 대학의 유형과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정시의 비율이 낮은 지방대와 전문대학은 정시 비율을 높일 경우 학생 충원이 힘들어진다. 수시와 정시를 통합하면 수도권 주요대학 중심의 사실상 ‘1부리그’와 나머지 대학인 ‘2부리그’로 구분될 우려도 있다. 입학전형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지방대와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이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대입전형 발표 3개월을 앞두고 이렇게 혼선이 발생한 것은 여론에만 휩쓸려 대입의 주체인 대학가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가에서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수차례 목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교육회의는 자신 있게 “1개 단일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결정 시간이 임박해지자 ‘대학 자율’을 핑계로 뒤로 물러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결과 발표를 앞둔 대학기본역량진단과도 맥을 같이한다.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대학이 너무 많다는 여론에 등 떠밀려 무리하게 시도한 대학기본역량진단(대학구조개혁평가)도 똑같은 지표를 모든 대학에 획일적으로 적용해 문제를 키웠다. 지표를 맞추기 위해 대학에는 비정년트랙이 증가하고 대학의 역량을 넘어선 장학금 지급으로 대학 재정은 더 어려워지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전국단위로 경쟁할 땐 수도권에서, 권역별로 할 땐 지방대에서 “대학이 죽는다”며 우려를 나타냈고 규모별, 국·사립별, 대학병원 소유 유무에 따라 각기 다른 상황과 발전계획을 갖고 있음에도 일률적인 지표를 강요받았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론화 범위와 의제 설정을 앞두고 국가교육회의가 갈팡질팡할수록 대입 예측성이 낮아져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혼란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사교육을 불러일으킨다. 획일적인 지표를 맞추기에 급급한 대학들은 미래 안목을 갖고 발전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고등교육의 질이 저하돼 국가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제라도 대학을 둘러싼 정책은 대학에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 유형과 특성, 처해진 상황에 따라 대학이 저마다의 발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면 그에 맞춰 대학은 스스로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고 교육시키며 성장할 수 있다. 엘리트교육을 표방해 변별력을 요구하는 대학이라면 그에 맞춘 입시전형을, 대중교육을 목표로 입학 후 교육에 더 집중하는 대학은 그에 맞춘 전형을 설계할 것이고, 학생들은 본인의 성향에 적합한 입시전형을 선택해 진학하면 된다. 김진경 위원장의 제안처럼 학생·학부모 등 지역사회에서 참여하는 모니터링과 같이 견제장치를 두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한다면 자율로 인한 부작용 최소화도 가능하다.

자율의 사전적 의미는 '강요되지 않은 결정'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 유독 대학만을 명시해 자율을 강조한 것은 고등교육 기관이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국가·사회를 위한 미래 비전을 설계해 스스로 발전해 나가라는 사명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헌법이 부여한 대학 자율을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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