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학교 연구기획팀장

모처럼 좋은 소식이 들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감사원,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종이영수증 없이 전자영수증 보관만으로도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의견을 받아 연 4800여 만 건에 이르는 정부 사업비 종이영수증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례를 법령 개정 없이 적극적인 유권해석만으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내 원칙허용・예외금지라는 네거티브 규제 원칙을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자평한다.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불필요하게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려는 의지로 의미 있는 작은 혁신을 이끌어낸 정부 관계기관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학행정인의 입장에서 어떤 소회와 함께 몇 가지 반성적 성찰을 하게 된다.

규제는 크게 포지티브 규제와 네거티브 규제로 나눈다. 포지티브 규제는 정책이나 법률상으로 허용하는 것 이외에는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하는 것 이외에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 규제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포지티브 규제 국가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조치는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극적인 전환이 법률 개정이 아니라 ‘적극적인 유권해석’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똑같은 정책이나 법률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 유권해석의 폭이 넓을수록 규제 대상자가 그 정책이나 법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규제 대상자는 그 규제를 해석하는 관계기관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이 점이 필자에게 어떤 소회가 들도록 하는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예전엔 분명 종이영수증이 확실한 증빙수단이었을 텐데 언제부터 그 용도가 다했을까? 되돌아보면 우리가 열심히 풀칠을 하고 있는 사이에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그러면서 전자영수증이 진본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어느 시점을 이미 오래전에 지나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자영수증이라는 진본을 바로 곁에 두고도 종이영수증을 진짜처럼 여기며 행정을 해온 것이다. 그 기간은 아마도 10여 년 이상은 족히 될 것이다. 이처럼 진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관행만 따르는 행정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그동안 대학행정인은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계속 종이영수증에 풀칠을 해오고 있었던 것일까? 연구비카드가 읽히는 순간 카드사의 서버를 통해 정부 관계기관과 전담기관으로 실시간 전송이 되는 고도의 정보시스템을 갖추고도 왜 풀칠을 멈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대학의 행정은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영수증 풀칠을 멈추게 한 것은 대학이 아니라 정부라는 사실을 생각해봐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 ‘적극적인 유권해석’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정부의 이번 조치 이전에 과감하게 전자영수증으로 전환한 앞선 몇몇 기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우리에게 그 권리를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모든 정책과 법률은 포지티브 규제와 네거티브 규제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다. 대학행정인 각자가 자신의 일에서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하지 않으면 그 규제 정도는 점점 더 포지티브 쪽으로 기울어지고 그만큼 대학의 자유 공간도 줄어들게 된다. 대학은 마음껏 상상하고 가능성의 자유를 누리는 공간이 돼야 하고 대학행정인은 그 공간을 확보해줄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행정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규제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지 적극적인 유권해석 관점에서 하나하나 재점검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