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본지 논설위원 / 경일대 교수,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평가단장

롤러코스터에 비유할 정도로 한반도의 정세 변화가 급격하다. 거친 풍랑을 헤치고 나아가는 대한민국호의 앞날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평화의 신대륙으로 향하고 있다는 데 따른 기대와 미답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이 격동의 시기에 대학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은 무엇이며, 대학들은 그 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가. 이런 물음에 누구도 자신 있는 답을 내놓기가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대비하고,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새로운 교육비전과 정책방향을 제시'하고자 국가교육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새로운 기구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국민의 교육혁신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설립목적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말을 신뢰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현 정부의 1년 성적표에서 교육 분야가 최하위로 나타난 결과가 그런 의구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대학정책에 대한 우려는 이미 절망감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20여 년 정부 주도의 대학정책이 빚은 폐단과 불신을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어렵겠지만, 커다란 실망을 안긴 것은 분명하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갖가지 난제가 난마처럼 얽힌 교육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을 따름이다. 밟는 절차가 답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언표가 아니라 실천이다. 우리가 주목해볼 만한 사례가 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롭게 쓴 픽사(Pixar)는 일종의 두뇌 집단인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를 적절히 가동했다. 실무자들은 끊임없는 리뷰회의를 한다. ‘영화 출시 뒤 받는 관객들의 비난보다는 동료들의 지적이 낫다’는 의식으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픽사의 기업문화는 ‘최고들의 긴밀한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 국민들에게 교육정책을 내놓아야 할 교육부에 가장 절실한 게 이런 협력일 것이다.

국립대와 사립대 교수들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6년 10월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힘을 합쳐 대학정책학회를 창립했다. 설립취지는 대학정책에 관한 한 국가와 책임을 나누겠다는 대학인들의 협력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난 지금 학자들의 협력으로 다양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앞서가는 국가들의 ‘국가와 대학의 균형’ ‘거버넌스 체제’ 등에 내재된 고갱이도 새로 조명하고 있다. 불원간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대학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요구된다면, 우리 식 훔볼트 각서가 나올 수도 있다.

대학인의 대학ㆍ교육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서는 우선 두어 가지 일이 선결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협력할 주체들의 상호신뢰다. 신뢰는 당연히 부정비리에 반비례한다. 사학혁신위원회에 접수된 바의 의혹 같은 것이 의심할 바 없는 협력의 장애물이다. 당해 대학들과 교육부는 빨리 해소해 믿음의 길을 터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협력은 이 시대의 준엄한 요구다. 또 하나, 정부가 서둘러 해야 할 일은 폭넓은 청사진 마련이다. 인구절벽, 청년실업, 사교육, 양극화, 서열화, 4차 산업혁명 등 연결된 문제의 극복방안을 감안한 협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을 필요로 하는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2018년 6월, 새로운 협력을 시도하기에 딱 좋은 달이다. 국내외의 협력이 눈부신 푸름으로 역사에 굵은 한 획을 긋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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