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 광주보건대학교 교수

오랜만에 차를 바꿨다. 평범한 것도 싫고 가격이 비싼 것도 싫고, 여러 이유를 들먹이다가 색깔이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레저용 차량을 선택하게 됐다. 근데 막상 운전하려니 차체가 크고 높아 당황스럽고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졸지에 초보운전자가 되고 나니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옛날이건 지금이건 여전히 불쑥 끼어드는 운전자도 많고 공격적이고 난폭한 운전자 역시 많다. 때로는 여자운전자라고 무시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이들을 만나면 흥분하고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운전 방식이 달라진 거 같다. 사소함에 매달리지 않고 느긋해지도록 노력하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운전을 통해서라면 너무 거창한가….

실제로는 대단하지 않은 일에 우리는 흥분하는 경우가 많다. 낯선 차량이 자신의 차 앞에 끼어드는 경우 대부분 화를 내며 평상시 점잖았던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왜 그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못할까. 자신도 바쁜 일이 있으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을 때가 있으며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오히려 그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고 그렇게 서두르는 행동이 얼마나 스트레스받는 것인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은 어떠한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조금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는 이와 비슷한, 사소하면서도 짜증스러운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얼토당토않은 비난을 듣거나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꺼림칙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쓰지 않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는 너무 사소한 일에 전전긍긍하느라 인생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느긋함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긋하다는 것을 휴가를 가거나 쉬거나 은퇴를 하거나 일을 마쳤을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인생의 대부분을 사소한 것들에 휩싸여 서두르고 우왕좌왕하며 보낸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끝날 때까지 느긋해지는 것을 미룬다. 물론 그것은 결코 끝날 리가 없다. 따라서 느긋함을 뒤로 미루지 말고 삶 속에서 규칙적으로 취할 수 있는 마음 상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가 뭐든 잘해내며 그러한 태도와 창조성이 비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나도 초조한 상태에서는 일상 업무는 물론 논문이나 수업준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일단 마음이 느긋해지면 자신의 삶이라는 드라마를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어느 외국인 교수가 말하기를 멜로드라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연애담을 테마로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건과 줄거리 위주의 터무니없이 극적이고 과장된 장르라는 것이다. 멜로드라마에서는 온갖 사소한 일에 한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장되게 얘기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리하여 기어코 인생을 복잡한 사건이 뒤얽힌 막장으로 둔갑시키고 만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감상적이거나 통속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다만 스스로 사소한 것들에 얽매여 스트레스 받는 멜로드라마를 일부러 만들어나갈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삶의 대응방식을 바궈 느긋함을 갖고 사소한 일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놀랄 만큼 유연해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을 스트레스 가득한 멜로드라마에서 초코파이 속의 마시멜로우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멜로드라마로 이끄는 지름길일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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