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명지전문대학 교수

▲ 김현주 교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좋은 관습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의 경조사에 마음과 정성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좋은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이웃들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이웃에서 경사가 있으면 온 동네가 잔치를 벌이고, 이웃에 조사가 있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같이 슬퍼해준다. 이러한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것은 음식과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은 이웃의 경조사에 차려진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었다. 경조사를 치르면서 음식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좋은 관습이었던 것 같다.

가끔 경조사 식장에 갈 때에 어떤 곳에는 화환이 줄을 서기도 한다. 화환이 넘쳐서 화환의 리본만 떼어 벽에 걸고 정작 꽃은 배달하시는 분이 그대로 가져가기도 한다. 그나마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화환이 조금 줄어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경조사에는 화환을 보내고 받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 마음을 담아 보내는데 받는 사람은 때로 그것 때문에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장례식장에서는 화환 처리 비용을 청구하는 곳도 있다. 화환을 보내는 사람은 마음과 정성을 담아 보내지만 정작 받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화환 한 개에 10만원 정도 한다고 가정하면 100개를 받는 사람은 1000만원의 가치를 받지만 정작 예식이 끝나면 받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나눔과 기부에 대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쌀 화환 보내기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쌀 화환은 경조사 등에 소요되는 화환을 일회성 화환 대신 쌀 화환으로 보내는 것이다. 어떤 연예인은 청첩장 말미에 '축하를 위해 쌀 화환으로 보내주시면 모아진 쌀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서 매스컴에 보도가 된 적도 있다. 애경사에 보내고 받는 화환 대신 쌀로 주고받기를 하면 조금 더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몇 해 전에 장인께서 천국으로 소천하셨다. 임종하시기 전에 장모님과 가족들이 임종 후 장례 절차에 대해 의논하던 중 장인의 유지를 생각해 화환을 받지 말고 쌀로 받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자고 했다. 장인의 소천 후에 “고인의 유지에 따라 조화를 보내실 분은 쌀로 보내주시면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겠습니다.” 라는 부고를 띄웠다.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혹시 이런 부고가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기우였다. 생각 보다 많은 쌀이 장례식장으로 배달됐다. 장례를 마친 후에 쌀은 사회복지단체를 통해 주변의 어려운 분들에게 보내졌고, 쌀을 보내주신 분들에게는 쌀이 어떻게 보내졌는지 알리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보내는 분들의 마음도 우리 가족에게 전달됐고, 전달된 마음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눔이 됐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밥을 먹는 것이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 사회 복지 시설에서 지원하고 정부에서 지원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쌀 한 포대가 소중한 이웃이 있다. 이주 노동자들 중 일부는 아직도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어려운 형편에 밥을 제대로 먹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쪽방 촌에 가면 쌀 한 포대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한다. 대학 주변 원룸에서 자취하는 학생 중에도 쌀 한 포대가 소중한 학생들이 있다. 주변에는 쌀 한 포대가 너무 소중한 이웃이 아직도 많이 있다.

쌀 화환 주고받기는 받는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면 보내는 사람들이 편하게 보낼 수 있다. 대학의 구성원들이 먼저 쌀 화환을 받기를 하고, 받은 쌀을 어려운 우리 이웃과 우리 학생들에게 나눠주면 어떨까? 집안의 경조사로 인해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먹을 수 있었던 것 처럼 쌀 화환 주고받기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좋은 마음의 유산을 이어가는 길이 아닐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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