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윤 인덕대학교 교수

▲ 오부윤 교수

대만의 기술직업교육은 국가 전략산업 육성에 따라 정부 주도하에 일관성 있게 추진해왔다. 대만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1980년대 하이테크산업을 국가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숙련공(Skill Worker)과 기술자(Technician) 중심의 인력 양성에 주력했다. 당시 직업학교와 전문학교가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는 기술직업교육을 ‘지식형’으로 개혁해 ‘지식형 근로자’와 ‘지식형 기술근로자’ 양성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존 직업학교와 전문학교를 전문대학, 기술대학, 과학기술대학으로 변화했다. 특히 과학기술대학은 4년제로 승격하면서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개설할 수 있도록 해 일반교육 못지않게 일관성과 체계를 구비한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렇게 탄생한 대만의 과학기술대학이 현재 59개(국립14, 사립45)다. 근 20년간 과학기술대학이 쌓아온 교육과 경험, 배출한 ‘지식형 기술인력’들은 미래 기술산업 육성에 든든한 후원군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만의 고등기술직업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대단하다. 기술직업교육 관련 정부 책임자는 행정원장이며, 주관부처는 교육부이다. 기술직업교육은 교육부의 기술 및 직업교육사(技術及職業敎育司)가 총괄한다. 이는 일반대학을 총괄하는 직급과 동등한 지위로 우리의 ‘국장’급에 상당하며, 정부를 대표해 대만 기술직업교육을 지휘, 감독하고 있다. 기타 중앙의 노동부, 지방 각 시·현 정부, 직업교육기관들은 협력 및 시행 기관이다. 그 하부에 종합기획과, 학교경영과, 산학합작발전과, 교육품질 및 발전과 등 4개의 과가 설치돼 관련 업무를 분장하고 있다. 이처럼 대만 정부는 기술직업교육에 대한 관심을 일반 교육과 동등하게 지원하고 있다. 고등기술직업교육의 정점인 4년제 과학기술대학도 이러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또 대만 정부의 고등기술직업교육에 대한 관심은 정부가 인가한 과학기술대학 59개 가운데 23%에 해당하는 14개 대학을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역 내 사립대학들과 경쟁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고등기술직업교육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과학기술대학의 책무는 특색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진행

출범한 지 2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대학’이란 명칭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성화 고등기술직업대학으로서 명망을 인정받는다. 그 명칭은 정부가 인가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가를 위해서는 정부의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함은 물론 인가 후에도 매년 산학협력 임무 완수, 교육의 품질 관리 등 경영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 결과는 공개되며, 신입생 모집, 국고 지원 등에 반영된다. 3년 연속 인증 기준이 미달한 대학에 대해서는 최종 ‘퇴출’이라는 가혹한 책임까지 따르도록 하고 있다.

현재 대만에는 59개(국립 14, 사립 45)의 과학기술대학이 있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국가의 전략 산업, 지역산업 육성, 산업인력 수요도, 기술 연구 개발 필요성 등을 면밀히 분석해 인가받은 대학들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부응해야 할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 산업 인력 양성 교육을 넘어 기술 연구 개발의 책임까지 부여받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대학 주변에는 수많은 산업단지, 연구단지, 창업단지가 조성돼 있으며 대학들에 산학협력을 통해 공생공영 사업을 주동적으로 발굴하고 특색 있게 추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과학기술대학의 ‘본능(本能)’으로 대학 경영 위기 타개

대만의 고등교육기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경영 위기 대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보다 상황은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수한 과학기술대학들의 지표를 보면 걱정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본능(本能)’에 충실한 결과만 강하게 나타난다.

과학기술대학의 본능은 교육에서 볼 수 있다. 정부는 통식교육(通識敎育: 지식형 기술인 양성을 위한 기초 교양)과 3창(창의·창신·창업) 교육을 특색 있게 추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대학들도 이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현장주문식교육 프로그램, 전공 기술 개발과 창업의 연계, 기술 교육의 융합, 학제의 융합, 대학공장 운영, 학생 발명품의 지역 산업체 제공을 통한 재정 기여 등 성공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명 ‘대만식 기술직업프로그램’에는 이러한 것들이 망라돼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대학들의 기술직업교육프로그램이 우수하기 때문에 매년 정규 신입생 인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나아가 심화과정, 산업체 재직자 위탁, 전직자 과정, 심지어 노인대학까지 유치해 튼실한 대학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야간반 학생만 40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는 대학, 산학협력 출연 기금과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낸 대학발전 기금이 1년 대학운영 예산에 맞먹는 대학도 있다. 과학기술대학의 교육과 기술 연구 개발 능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기술 연구 개발 능력을 정부나 지역 산업체들로부터 인정받기 때문에 국고 프로젝트 유치도 원활하고, 지역 산업체들과의 산학협력도 이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대학들의 산학협력 역시 특색이 있다. 지역 산업체가 원하는 기술 개발, 애로 기술 해결, 재직자 위탁 교육, 중소기업의 환경 개선을 위한 컨설팅, 대학 개발 기술의 산업체 제공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학 내 각종 센터가 산학협력의 연결문이다. 센터는 대학급과 학과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학급은 대학에서 주관하며 정부 프로젝트 등 대형 과제를 수행한다. 학과급은 학과 특색을 살린 산학협력 지원과 창업을 목적으로 교수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참여해 공동으로 협력과제나 기술 개발을 진행한다. 학과마다 한 개 이상의 센터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과학기술대학들의 특징이다. 이들이 개발한 기술과 제품은 협력 산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공된다.

과학기술대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활기찬 학생 창업이다. 정부나 과학기술대학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창의적·창신적·창업적 ‘3창 교육’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들 대학들의 교육과정이나 내용을 보면 ‘3창 교육’은 그 자체가 융합이고 연합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학과 간 융합 교육은 자연스레 진행되고 있다. 창업은 관심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단과대학이나 학과 소속 센터에서 선배나 성공 창업 인사들과 연결한 멘토-멘티제도를 통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학도 창업을 적극 권장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학생들이 출원한 발명품을 대학이 보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창업으로 지원하거나 지역 산업체에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대학 교육 역량 홍보와 재정 수입 기여에 도움이 된다. 이처럼 과학기술대학들은 기술직업교육의 ‘본능’ 발굴에 전념하면서 대학의 경영 위기를 극복하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기술직업교육’도 수출한다 - ‘신향남(新向南)’ 정책

최근 대만은 기술직업교육을 수출하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신향남(新向南)’ 정책이라 부른다. 교육부 기술직업사 산하 ‘교육품질 및 발전과’가 직접 이를 주도할 정도로 정부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동남아 특히 베트남이 전략적 무대다. 최근 베트남 정부도 교육 개혁을 통해 기술집약적 산업 인력 양성에 주력하고 있는데, 대만의 성공 사례를 모델로 삼고 있다. 대만 정부와 과학기술대학들도 대학 경영 위기 극복  차원에서 베트남 지역을 신입생 유치, 분교 설치의 근거로 삼아 진출하고 있다. 대만 직업교육의 ‘신향남’ 정책은 동남아뿐만이 아니다. 남미와 중국 대륙으로까지 영토를 넓히고 있다. 교육 수출 품목도 다양하다. 강의실 교육은 물론 기술 개발, 창업 교육 경험까지 포함하고 있다. 중국의 정부나 대학들은 대만식 기술직업교육 경험의 진입을  환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매년 수많은 학생들을 선발해 대만의 과학기술대학 입학을 지원하고 있으며, 대학 관계자들이나 학생들은 대학 경영, 창업 연수를 위해 수시로 대만을 방문하고 있다. 해외 진출 자국 기업에 대한 기술 개발 지원도 활발하다. 주로 제조업이 많이 진출한 푸젠성과 광둥성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과학기술대학들은 직업교육의 우수성과 함께 기술개발 역량까지 홍보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고등 기술직업교육

올 2월 대만 정부는 남부 가오슝(高雄) 지역 3개 국립과학기술대학을 통합해 ‘국립가오슝과기대학’으로 재탄생시켰다. 재학생 2만8000명, 동문 16만 명을 거느리게 된 이 대학의 출범은 언론들도 ‘대만 교육사의 대사’라 칭송할 정도로 정부의 당찬 의지가 담겨 있다.

과학기술대학을 교육과 기술 연구 능력을 융합한 새로운 대만식 과학기술대학으로 변화, 발전시켜보려는 정부의 교육적 의지는 물론 도시 회생과 지역 균형 발전이란 큰 그림도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 남부 도시에 교육과 연구의 복합 기능을 지닌 과학기술대학 단지를 조성해 수도 타이베이 중심의 인구와 교육 집중을 분산함으로써 지방 도시의 회생과 함께 국토의 균형 발전이란 두 개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이다. 그 중심에 과학기술대학이 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는 정부가 과학기술대학의 고등직업교육 성과를 인정하는 증명이기도 하다. 이처럼 성공한 고등 기술직업교육은 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넘어 도시 재편, 도시 회생 등 정부의 중차대한 정책 추진에까지 기여하는 기능도 구비하고 있다.

기술직업교육 강화는 정부가 설계·관리해야

직업교육이 왜 중요한가. 다양한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능은 개인은 물론 사회, 경제, 나아가 국가 발전에 여러모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우수한 직업교육을 받은 사람은 본인의 재능을 산업 현장에서 발휘하게 됨으로써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추구할 수 있으며, 우수한 직업교육은 건강한 사회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또 양질의 기술 산업 인력이 체계적으로 양성된다면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세계는 지금 4차 산업사회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 전략과 방안이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교육 현장, 특히 기술직업교육 현장이 가장 먼저 반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술직업교육의 발전과 책임은 관련 교육 기관들만의 고민으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큰 틀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서 설계하고 관리해줘야 한다.

정부·과학기술대학·산업체가 합작해 만들어낸 대만의 과학기술대학 성공 사례를 통해 국가와 정부의 고등직업교육 발전에 대한 선도와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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