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범 오산대학교 교수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이 드세지고 있다. 뭔가 지금으로서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그럼에도 교육현장에서의 개혁은 더디기만 하다. 이 점은 고등직업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벤치마킹’이 아니라 ‘퓨처마킹’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과거의 성공방식은 이제 더 이상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암기 위주의 교육 시스템은 미래 시대에 요구되는 창의적 인재 양성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이에 본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우리 교육환경에 미치는 여러 가지 양상을 살펴보고 고등직업교육 차원에서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⓵ 4차 산업혁명, 교육 패러다임을 바꾼다
⓶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인재상
⓷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혁신
⓸ 대학, 변해야 산다
⓹ 전문 역량 교육, 대학과 기업의 상생
⓺ 성인 친화형 대학, 은발 세대들의 캠퍼스
⓻ 디지털 시민, 글로벌 시민 대학
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글로벌 선진 직업교육현장
⓽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고등직업교육
⓾ 전문가 좌담회

OECD 선진 국가들의 고등직업교육 혁신 노력

▲ 김지범 교수

4차 산업혁명의 가장 대표적 특성은 빠른 속도다. 기술진보와 제4차 산업시대의 도래로 사회 및 산업현장은 급변하고 있으며 산업기술 고도화와 창조적 지식기반사회의 수요에 맞는 인력 배출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대학의 학제는 2~3년으로 규제(고등교육법 제48조)돼 있어 산업현장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적인 산업구조하에서 전문대학은 중간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서 기능을 해왔으나, 변화된 산업구조하에서 2년 또는 3년의 단기교육으로는 전문실무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고, 보다 나은 전문인력과 숙련된 기술자에 대한 사회와 산업체의 요구로 기술숙련과 훈련기간이 필요하다. 

또 사회변화와 산업구조의 변화에 발맞춰 전문대학의 교육목표가 “중견직업인 양성”에서 “전문직업인 양성”으로 수정(고등교육법 제47조, 2011년 전문개정)됐으므로 전문대학은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 실무응용분야의 고도 전문직업기술인을 양성하고, 기술자 및 준전문직을 넘어 전문직종과 관련된 기술 및 지식, 즉 전문기술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직업교육의 고등교육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특히 일반고등교육의 직업화 진행과 함께 직업교육의 고등교육화로 일반교육과 직업교육 사이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과 실업자, 경력 단절자, 계속교육 요구자 등 다양한 요구를 가진 직업교육 수요자들에게 맞춤형 직업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고등교육체제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문대학 수업연한 다양화”가 아닌 “직업교육 수업연한 다양화”로 직업교육의 혁신적인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직업교육의 혁신 및 변화가 OECD 국가 및 여타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고등직업교육 영역에서의 변화가 직업교육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산업구조가 지식사회로 변천하고 높은 수준의 스킬을 요구하는 직업이 날로 증가함에 따라 직업교육에 요구하는 수준도 특정분야의 고도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는 능력을 갖춘 높은 수준의 학력과 자격이 요구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OECD 국가에서 교육적 성취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 울산과학대학교 스마트팩토리교육센터

외국 고등직업교육기관의 교육체계를 간략하게 살표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대표적인 고등직업교육기관은 Community College로 자격증(Certificate)과정과 Associate Degree(준학사, 2년), Bachelor Degree(학사, 4년)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06년 8월 PerkinsⅣ 법이 통과되면서 기존 직업교육의 정의 중 ‘학사학위 이상이 요구되지 않는 직업의 준비’라는 규정이 삭제됨에 따라 Community College에서 4년제 학사학위 과정개설이 가능하게 됐다. 유럽과 다르게 미국의 교육체계는 매우 단선적이고, 직업교육 트랙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며, 특징적인 것은 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학업연한이 2년인 Community College에서 주의 특성에 따라 학사학위수여과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1992년 계속·고등교육법(Futher and Higher Education Act of 1992)의 제정으로 폴리테크닉과 일반대학교 사이의 법적 구분이 폐지돼 “국가학위수여위원회(CNAA;Council for National Academic Award)의 이름으로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 대학 자체규정에 의거해 독자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영국의 고등교육체계는 일반대학 및 그 외 기관들이 양성직업교육(initial vocational education)을 제공하며, 3~4년제 학사, 석·박사를 개설하고 있는 대학들이 2년 과정의 고등단계 국가자격증 및 졸업장(HNC 및 HND) 그리고 FD(foundation degree)를 포함한 폭넓은 단기과정도 제공하고 있다.

호주의 직업교육은 주로 공인훈련기관(RTOs;Registered Training Organization)이 담당하고 있으며, 기술전문대학(TAFE), 호주기술대학(ATC) 등의 기관이 있다. 기술전문대학(TAFE)은 주로 각종 직업에 종사할 인력의 교육 및 재교육, 향상교육훈련을 담당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또는 대학교와의 협약을 통해 학사학위(Degree), 준학사학위(Associate Degree)를 제공하고 있다. 호주는 단일화된 고등교육(Unified tertiary education) 구축을 위해 호주학위(자격)체계(AQF)를 통해 학위(자격)별 학습성과를 규정해 질 관리의 기준을 제시하고 학위(자격)별 연계 체계를 확보하고 있다. 호주학위(자격)체계의 주요한 특징은 학위(자격)별 수준만 구별하고 섹터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으며,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뤄진 교육이냐, 직업교육기관에서 이뤄진 교육인지 구분하기보다는 달성한 학습성과(Learning outcome)의 수준 차이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16개 주(Länder)로 구성돼 있으며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책임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연방교육부(Federal Ministry of Education and Research)는 교육의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주정부는 그들이 필요한 교육관련 조례를 제정한다. 따라서 교육운영체제는 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독일의 고등직업교육전문기관은 파혹슐레(Fachhoschule)로 1969년 설립됐으며, 학문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직업에서 고도의 전문기술능력을 요구함에 따라 상업, 디자인, 사회교육 등을 담당하던 고등전문학교 형태에서 발전한 학교 형태다. 학문중심의 종합대학(Universitat)과는 다른 형태로 높은 수준의 전문기술을 요구하는 실무·응용중심의 교육을 담당하는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 정착했으며, 수업연한은 8학기로 졸업 후 학사와 전문자격증이 수여된다.

일본의 고등직업교육기관은 단기대학, 전문학교(전수학교 전문과정), 고등전문학교 등에서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전문사(전문학교, 2~3년), 고도전문사(전문학교, 4년 이상), 준학사(고등전문학교과정, 고등학교과정 포함 5년), 단기대학사(단기대학과정, 2~3년) 등의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 해외 선진국의 고등직업교육기관 수업연한 현황

따라서 우리나라도 전문대학 수업연한을 사회 및 산업수요에 맞게 1년부터 4년까지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사회에서 요구되는 양질의 단기직업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산업현장에 필요한 숙련된 전문인력 배출이 가능한 직업교육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 수업연한 다양화 교육체계(안)

수업연한 다양화로 인해 전문대학의 모든 전공을 4년제 학과로 전환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전공에 한정해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하려는 것이며, 오히려 일반대학에서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전공을 모방해 4년 과정으로 운영하는 일반대학이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키고 있다. 전문대학의 전공 중 조리, 뷰티·미용분야는 전문대학을 졸업하든 일반대학을 졸업하든 동일한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지만, 전문대학은 2년, 일반대학은 4년의 교육과정으로 구성돼 있어 사회차원에서의 직업군 및 단계별 손익비용을 추정한 결과 연 2500억원 이상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전문대학 수업연한을 사회 및 산업수요에 맞게 1년부터 4년까지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양질의 단기직업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산업현장이 필요로 하는 숙련된 전문인력 배출이 가능한 직업교육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수업연한 다양화는 능력을 갖춘 전문직업인이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국가·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순환 체제로서, 국가 직업교육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미국·영국·독일·호주·일본 등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고등직업교육기관의 학제를 다양화하고 학위도 준학사, 학사, 석사학위까지 수여하고 있다. 해외 유학생 유치, 국가 간 인력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학위과정을 다양화하고, 고등직업교육의 국제적 통용성을 확보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대학은 일반대학과 인력양성 목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수업연한의 제한으로 일반대학의 하급교육기관으로의 사회적 낙인(Stigma)효과가 존재하므로 법 개정을 통해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 집중 육성함으로써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개선하고, 중견 기술인으로 사회에서 존중받는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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