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서정대학교 교수

▲ 조훈 교수

‘대학이 뭐 이래요!’ 지난 4월 서울시내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근 전문대학에 전기전자계열에 진학한 학생의 넋두리다. 잔뜩 기대를 하고 진학한 전문대학 특성화학과의 실험실습 기자재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특성화고등학교의 시설만도 못한 것을 보고 실망한 흔적이 역력하다. 정부는 2015 개정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올해 고1부터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기초소양을 가진 창의·융합형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and Mathematics) 교육을 위한 과학기술에 대한 실험실습 기자재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점점 늘어가는 빈 교실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실험교육 시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15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공부하는 학생들은 기존의 2009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학생들과 배움의 방식에서 그리고 평가의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이과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과정은 이제 개방형 플랫폼을 가진 형태로 과목공부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빅아이디어(Big Idea)라는 개념으로 하나의 개념을 여러 학문에서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어렵게 배우게 되는 ‘베르누이정리’라는 개념이 ‘공중에 탁구공 띄우기’ ‘종이 글라이더 만들기’ 등의 실험으로 체득해 생활 속의 개념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게 만들고 이를 통해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또 평가에 있어서도 답이 있는 4지선다형과 같은 객관식 문제보다는 답이 없이 학생들의 생각을 넣는 ‘추론’ 문제가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변화는 아이들의 성적에 관계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양한 형태의 학습경험을 갖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학습경험이 대학 신입생 중 16만 명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3년 후면 2015 개정교육과정으로 수업을 경험한 학생들이 전문대학에 입학한다. 그렇다면 전문대학은 이러한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준비가 안 돼도 너무 안 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2가지에 기인한다.

첫 번째는 전문대학에 지원하는 정부의 재정지원 방식과 내용으로 귀결된다. 4년제 일반대학이 ‘잘 가르치는 대학‘을 표방하면서 만들어진 ACE 사업이나 전공개편을 이야기하면서 지원되는 PRIME 사업 예산처럼 대학에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선을 위한 예산지원이 상대적으로 전문대학에는 거의 없었다. 전문대학의 특성화사업이나 사회수요맞춤형 사업의 경우 일부 학과의 특성화를 위해 지원됐다는 점에서 재정지원의 성격이 훨씬 다르다. 새로운 재정지원 사업은 전문대학이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대학의 노력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양성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4차 산업혁명 시대 고등직업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의 변화와 각 전공별 교육과정의 개편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혁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 교수들의 입장에서 교육과정의 변화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레거시 문제(Legacy Problem) 때문이다.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이나 교수학습방법론을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거시 문제를 극복하고 혁신적인 교수학습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럴싸하게 기자재만 구입한다고 되는 문제다 아니다. 이를 운영할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소프트웨어는 사람과 프로그램이다. 새로운 세상에 맞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교수자원은 확보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문제를 이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때가 온 것 같다. 통상 교육과정을 바꾸려면 6년이 걸린다고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고 2015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학생들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전문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4년제 대학 졸업생에 비해 입직연령이 2년 이르기 때문에 짧은 시간 이를 가르쳐 사회에 내보내야 해서다. 그러면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은 4년제 대학 교육과정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고 복합적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별 대학의 노력으로서는 예산과 자원문제로 인해 해결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전체 전문대학 차원에서 이러한 노력을 함께할 수 있는 조직과 노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시간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제4차 산업혁명과 ‘창의융합형’ 새로운 진로교육을 받고 진학하게 될 ‘신인류’를 우리는 가르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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