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두진 한세대강사

올 2월 14일 중국 교육부는 ‘고등교육법’과 ‘사립교육촉진법’ 규정과 설립평의위원회 시찰 결과에 따라 시후대학(西湖大学, Westlake University)의 설립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시후대학은 중국의 몇 안 되는 이공계 사립대학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시후대학 설립이 중국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 대학의 설립 배경과 교육의 방향성에 있다. 시후대학의 전신은 저장시후고등연구원(浙江西湖高等研究院)이다. 연구기관 시절 중국 칭화대학 시일공(施一公) 교수, 베이징대학 이공계 주임 요의(饶毅) 교수, 중국과기대학 반건위(潘建伟) 교수 등이 뜻을 모아 ‘고수준, 소규모 엘리트, 연구 집약형’세 가지 이념을 지향하는 고등 교육기관을 설립한다는 데 뜻을 세우고 청사진을 만들었다. 이렇게 출범한 시후대학의 교과과정은 교육과 연구가 일체화돼 학교 전체가 연구실의 집합체로 간주된다. 각 연구실의 연구결과는 학교 내 다른 연구실과 자유롭게 교류되며 학생(연구원)은 복수의 연구책임자들의 지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다. 현재 시후대학의 학생은 박사생으로만 구성돼 있으며 학부과정은 2023년에나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학부과정부터 시작해 서서히 대학원 과정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일반대학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학생 수도 5000명 이하로 제한해 그야말로 우수한 엘리트를 양성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대학이 나타날 수 있는 배경은 대학 운영자금을 설립자의 투자, 교육기금회, 학교 운영 수입 그리고 정부 후원을 통해 마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설립자가 어떠한 재산권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후대학 정관에는 ‘설립자는 학교의 재산 투입에 대해 어떠한 재산 권리도 없으며 누리지도 않으며, 학교 운영 수익을 얻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행정조직은 최소한의 규모로 운영되며 초대 총장인 시일공 교수는 자금모집위원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학교의 대표자는 총장이 아닌 PL(연구책임자)이다’ 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 결과 불필요한 지출을 줄임으로써 학교는 냉동전자현미경, 고해상도 질량분석기 등 고비용 기자재를 다량 구입해 학생들의 연구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2015년 마윈(马云) 알리바바 CEO가 설립한 후판대학(湖畔大学, Hupan University)이 있다. 후판대학은 알리바바 기금회의 자금에 의해 운영되는 대학으로서 학부 3년제 과정이다. 시장 아이템을 개발하고 창업에 특화된 대학이다. 일반적으로 후판대학은 상업형 대학이며 시후대학은 연구형 대학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주요 의제로 설정했다.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성’ ‘초지능화’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 변화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이미 일반화됐다. 시간도 많이 흘렀다. 하지만 이 단어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집단은 대부분 기업체로 한정된다. 기업은 연구를 진행할 자본이 있으며 그 결과물을 상품과 결부시켜 ‘연구 – 이윤창출 – 연구’ 사이클을 완성시켰다. 시후대학의 창시자는 학문 후학 세대에게 대학 과정에서부터 높은 수준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기업체에만 존재했던 사이클을 대학에서의 ‘연구 – 기부 – 연구’로 재구축했다. 중국에서 이러한 대학의 출현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계가 나아갈 하나의 예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