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 이종희 교수

올해 양파가 풍년이라고 얼마 전 시어머니로부터 햇양파를 듬뿍 선물 받았다. 탱글탱글하고 단단하지만 아직 껍질은 얇고 연한 갈색이다. 말려서 저장하기 위해 베란다에 넓게 펼쳐두니 은은한 양파 향기에 건강함이 쑥쑥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양파를 빨리 소화하기 위해 양파 장아찌를 만들기로 하였다. 장아찌의 황금비율을 검색하고 자주 가는 친환경 매장에서 간장과 설탕, 식초를 낑낑대며 사왔다. 달콤새콤하며 아삭아삭한 장아찌가 완성되니, 와인 안주로도 좋고 더운 여름 식욕 없을 때 밑반찬으로도 좋을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6월은 매실 철이다. 작년에 매실청을 실패한 아픔이 있어 올해는 넘어가려고 했는데, 교회 사모님이 조금만 담그라며 매실을 건네준다. 담그기가 귀찮고 망설여져 살짝 고민하다가 받아오고야 만다. 파란 초록의 매실이 싱그럽고 향기롭다.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서 물기를 뺀 후, 이쑤시개로 하나하나 정성껏 꼭지를 떼어낸다. 막둥이 딸과 마주 앉아 ‘이렇게 하면 더 잘 떼어진다’는 둥, ‘꼭지가 튀어올라 머리카락에 붙었다’ 는 둥 깔깔대며 작업을 했다. 막상 꼭지까지 떼어내고 나니 양파 장아찌로 유리병을 다 소진한 터라 마땅한 용기가 없다. 늦은 시간 남편을 채근해 투명한 유리병 용기를 사왔다. 유기농 설탕을 듬뿍 넣고 설탕이 녹으며 청이 돼가는 과정을 매일 확인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사모님은 매실에 매일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사랑을 듬뿍 주면 놀라운 일을 경험할 거라는 말씀도 해 주신다. 믿을 수 없는, 그러나 믿어보고 싶은 말씀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모님의 말씀인지라, 막내는 병을 어루만지며 ‘맛있게 익으렴!’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조금 성가신 과정들이 있긴 하지만 매실청이 완성되면 온갖 요리의 양념으로도, 자주 배가 아픈 남편의 소화제로도 유용하게 쓰일 생각을 하니 든든한 마음에 미소가 돈다.

이리 나열하고 보니 내가 무척 살림꾼인 느낌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가끔 ‘전생에 내가 왕족이어서 살림이 영 익숙하지가 않은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예전에 공부하던 시절,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에 나는 외식을 무척 좋아했다.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육체적 피로함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낼 수 없었던 ‘맛’의 향연에 대한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같다.

그러나 요즘은 나가서 먹는 것이 오히려 귀찮을 때가 많고, 내가 해먹는 것이 도리어 빠르며, 심지어 ‘맛’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렸다. 요란하게 유명한 맛집을 다녀오고도 ‘그 정도는 아닌데…’라며 번번이 실망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맛있는 식당이라도 2~3일 연이어 가는 경우는 없다. 또 맛있어서 몇 번 가다보면 처음에 느꼈던 맛의 감동이 점점 사라지고 만다. 진수성찬의 한식당을 다녀와도 특별히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고, 고급 호텔 뷔페라도 갔을 때에는 이것저것 맛보느라 나중에 지나친 포만감에 기분 나빠질 때가 있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정성으로 차려진 식탁이 아닌 ‘바깥밥’의 한계가 그런 것이리라.

마트에서 된장·고추장을 팔지 않았던 시절, 장독대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항아리들이 유난히 따뜻하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그 수고로운 모든 과정을 가족을 위해 기꺼이 해내시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때문일 게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딸에게 ‘요리는 마음의 거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요리에 삶에 대한 태도, 혹은 타인에 대한 정성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다는 말이리라. 아니, 꼭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 만약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힘든 누군가에게 정성이 담긴 따뜻한 ‘집밥’ 한 끼 대접한다는 건, 단순히 ‘맛’을 공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리라. 오늘, 삶이 피곤한 그 누군가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정성스런 밥상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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