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민 전주대 교수회장(문화인류학)

대학교육 현장의 비판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학기본역량진단이 실시돼 1단계 가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 120개의 일반대학과 87개의 전문대학이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일반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교육부는 최근 3년간 각 대학의 부정·비리를 조사하여 감점을 한 뒤 최종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해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도 커지고 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대학교육현장의 비판적 목소리가 높았다. 대학서열화 타파를 고등교육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대학역량진단이라는 획일적 평가로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으며, 대학평가를 고등교육의 질 개선이라는 교육적 목표가 아니라 입학 자원감소에 대한 대응, 청년 취업난 해소, 비정규직 교원의 처우 개선 등 또 다른 정책 목표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도 중요한 비판점이었다. 이러한 고등교육 현장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을 강행하였고, 나아가 대학의 부정·비리를 대학 평가에 반영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사립대학으로서는 이사장이나 총장의 부정·비리 때문에 대학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을 우려한다. 법인 이사장이나 대학 총장이 비리를 범하였다면 그것은 이사장이나 총장이 책임을 질 일이지 대학이 책임을 질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법인 이사장 또는 총장의 비리는 대학의 비리와 구별왜야 한다. 대학이 입시비리나 학사관리 비리 등을 범하였다면 그것은 대학 평가에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이사장이나 총장의 횡령, 배임 등은 대학의 비리가 아니라 개인적 범죄행위다. 개인이 범한 비리로 대학이 부정적 평가를 받아 정부의 지원으로부터 배제된다면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대학 구성원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 된다.

또 부정·비리를 대학평가와 연계하는 것으로는 이사장이나 총장의 비리를 없애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비리를 자행하는 이사장이나 총장은 학생 교육을 위해 사용돼야 할 대학의 자원을 사익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대학의 교육 여건이 악화됨에도 사리를 추구한 사람들이 대학이 교육부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고 사익 추구를 중단할 리가 없다. 오히려 이 시책은 내부 구성원들이 이사장이나 총장의 비리에 침묵하도록 강요할 가능성이 더 크다. 솔로몬의 판결은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진 여인이 아이의 진짜 어머니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대학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내부 구성원은 대학을 살리기 위해 이사장이나 총장의 비리를 고발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사장이나 총장의 비리는 온존하게 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이사장 또는 총장의 부정과 비리는 사립대학을 사립학교법인의 소유물로 간주하고 있는 사립학교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사장이나 총장의 부정과 비리를 없애고자 한다면 대학 평가에 이들의 부정과 비리를 반영할 것이 아니라 사립대학법을 제정함으로써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평의원회를 학사 운영에 관한 의결기구로 자리매김하고 교수회를 법적기구화 하는 것이 대학 공공성 강화의 첩경이다.

대학의 부정·비리는 척결돼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이를 대학평가에 반영함으로써 이사장이나 총장의 비리 때문에 대학이 불리한 평가를 받고 그로인해 대학 구성원이 고통을 당하는 구도는 일종의 연좌제로 정당성이 없을 뿐 아니라 비리를 척결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이사장이나 총장의 부정·비리는 당사자를 처벌할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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