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섭 안동대 대외협력과장

평가라는 태풍이 지나갔다. 말 그대로 태풍처럼 어딘가는 무사하고 어딘가에는 상처가 남았다. 뒷말도 많다. 하지만 역설은 다른 데 있다. 대학신문 조사를 보면 대다수의 대학인들이 현행 방식의  평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다. 허점투성이 대학구조 정책으로 교육부가 목표로 하는 평가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평가를 무사히 통과한 대학에서는 웃음이 넘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학 재정지원을 받고 정원 유지 등의 당근이 약속돼 있는데도 말이다. 왜 그런가? 그 평가가 궁극적으로 대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해주지 못하기에 그렇다. 마치 이론과 현실이 다르듯이 서면평가와 대학이 처한 현실은 간극이 크다. 평가를 통과한 대학이라 해서 문제점이 없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제대로 된 대학발전 요소는 무엇일까? 이 지점에서 대학의 민주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같이 투명해지는 세상에 대학이 비민주적이라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대학현장에서 느끼는 ‘민주적’ 체감지수는 생각보다 낮다.

먼저 견제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총장을 예로 들어보자. 그간 간선제에서 다시 직선제로 복귀하고 있다. 절차적 측면에서 민주적인 복귀는 환영할 일이다. 물론 총장 직선제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가치판단은 별개로 둔다.

총장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 총장은 대학행정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 힘을 갖고 있다. 수많은 보직을 임명한다. 모든 위원회와 회의체는 초록이 동색 딱 그 모양새다. 여러 개의 보직을  갖고 있는 교수도 많다. 물론 개방형으로 보직자를 공모하는 대학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총장이 임명한다. 사무국장이라는 자리가 있지만 그걸 무력화시키고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 비일비재하다. 인적구성이 이렇다보니 대학의 의사결정구조 역시 무늬는 민주적으로 보이나 실질은 그렇다고 인정받기 어렵다. 지금 대학바깥의 어느 조직도 이러한 권한과 모양새로 의사결정을 하는 기관은 없을 것 같다. 가히 제왕적이다. 권한은 그렇다치고 이러한 시스템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다. 이런 점에서 대학 거버넌스는 아직 비민주적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의와 자율성을 기대하기에 대학조직이 너무 커져버렸고 관료화됐다. 견제 없는 독주가 무풍지대처럼 편안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대학의 관료화, 의사결정의 비효율 그리고 기득권은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그들만의 리그는 대학사회의 화합과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대학교수 사회는 보직자와 비보직자로 또 편이 갈린다. 성장을 위한 협력과 발전동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대학 공론장은 침묵뿐이다. 그 틈새에 대학의 고객이라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누릴 자리는 별로 없다. 그러니 대학 본연의 자유와 지성의 역할이 작동할 리 만무하다. 이 같은 구조로는 대격변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없다. 비민주적 관행이 조직을 지배하는데 정당성이나 설득이 힘을 받을 수 있을까?

대학의 자율적 역량제고에서 놓쳐서는 안 될 시급한 첫 과제가 민주성 회복이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때 관료화를 비롯한 제반 껍질들이 벗겨질 수 있다. 내용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산이 넘친다 한들 엉뚱한 곳으로 새기 쉽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 평의회의 민주적 세팅은 매우 중요하다. 아직도 많은 대학에서 대학구성원들의 의사결정체인 평의회가 교수일색으로 구성돼 있다. 말도 안 되는 구성이다. 총장부터 주요보직자도 모자라 평의회조차 교수들로 채워져 있는데 무슨 다양한 의견교환이나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특히 직선제의 취지는 모두 똑같이 한 표다. 간선제에서 대학교수는 직원이나 학생보다 표값을 더 쳐줬다. 직원 10명에 교수 한 명 이런 식으로 표가 주어졌다. 이는 표의 진정한 등가성을 무시한 비민주적 처사다. 교수는 1등 시민이고 직원과 학생은 2등 시민인가? 그야말로 적폐다. 이걸 완전하게 정상화해서 민주적 투표에 걸맞은 등가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대학구성원의 특정집단이 평의회구성에서 절반 이상을 장악하지 못하게 법이 개정됐다. 이 취지를 신속하게 살려 평의회를 구성해서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평의회가 진정한 대학의 견제기구 역할을 해야 한다. 덧붙여 일본의 일부 대학처럼 총장의 중간평가 제도를 실시하는 것도 대안이다.

시스템은 민주적일 때 강해진다. 대학 거버넌스도 마찬가지다. 민주적으로 대학의 자율적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분산과 협치의 대학행정 모델이 요구된다. 대학이 요구하는 자율성 확대를 위해서도 민주성의 심화는 필수적이다.

평가에서 통과됐다고 해서 대학의 앞날이 탄탄대로도 아니다. 학령인구감소라는 더 센 태풍이 진로 변경 없이 북상 중이다. 게다가 안팎의 환경 변화는 폭우를 동반한 태풍 모양새다. 안에서부터 민주적 역량이 축적될 때 극복의 힘도 창출된다. 그게 평가를 넘어 진정 대학이 살아나는 지혜로운 길이다. 대학이 변하려면 더 망해봐야 한다는 고통스런 지적을 아프게 들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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