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학과(學科)는 대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학과라는 용어의 사전적 정의는 ‘교수 또는 연구의 편의를 위해 구분한 학술의 분과’다. 이 정의는 다소 추상적이어서 대학 현장에서 사용하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학과라는 용어를 누구나 동일하게 인식하고 또 그렇게 사용하고 있을까? 대화 상대방에게 ‘학과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서로 다른 답변을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학과와 관련된 논의를 할 때는 먼저 용어 정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가 생각하는 학과의 관점으로 아전인수해서 그 회의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필자는 학과라는 용어가 대체로 네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전공’의 의미다. 학과를 사전에서 ‘학술의 한 분과’라고 정의한 것은 어느 정도 전공 관점에서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의 전공은 교육과정으로 구체화되고, 교육과정은 교과목들을 구성 요소로 한다. 둘째는 ‘교원의 소속’으로서의 의미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학과는 교원을 구성단위로 하는 조직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학생의 소속’으로서의 의미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학과가 자신들이 구성단위가 되는 조직체인 것이다. 넷째는 ‘모집단위’의 의미다. 학과는 입시에서 학생들이 선택해야 하는 하나의 모집단위가 된다. 모집단위에서 중요한 것은 입학정원과 그것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때 전공단위로 선택하도록 할 것인지, 무전공으로 입학한 후 재학 중에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할지, 이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조합해서 선택경로를 만들지, 그리고 어느 전공에 몇 명의 입학정원을 배정할 것인지가 모집단위 정책의 핵심이다. 이처럼 학과의 의미에 따라 구성 요소와 정책 목표가 다르다. 이 네 가지 의미 외에도 학과를 간혹 특정 직업과 연관해서 해석하기도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8조 1항에는 ‘법학전문대학원을 두는 대학은 법학에 관한 학사학위과정을 둘 수 없다’고 돼 있다. 이는 법학을 특정한 직업인 양성 기관으로 생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서양대학의 시초인 중세시대 3학부(신학·법학·의학) 중 하나였을 만큼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법학이 국내 주요 대학에서 사라지고 직업전문학교로서 법학전문대학원만 남게 됐다.

기존의 전통적인 학과 체계에서는 네 가지 의미를 굳이 구분해서 생각해볼 동기가 적다. 단일전공의 동일한 학과 조직에 교원과 학생이 모두 소속돼 있고 모집단위도 그 학과를 선택하는 구조라 학과에 대한 이질적인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학과의 구조가 일반적일까? 물론 지금도 대다수의 학과가 이처럼 일원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것은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전통적인 학과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학과가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과 비례해서 교원 소속 중심이 아닌 교육과정 중심의 융합전공 수는 늘어나고 있다. 대학입시는 학과별 모집에서 학부제로, 나아가 무전공 전형으로 확대되고 있다. 학생들은 단일학과 소속에서 벗어나 여러 학과를 넘나들고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에서부터 창업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과 산업체의 경계는 더 희미해져 가고 있고 심지어 산업체를 비롯한 사회에서 직접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처럼 전통적인 학과 구조를 탈피하려는 원심력은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학과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구심력 또한 여전히 강하다. 이 두 힘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긴장감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더불어 대학행정의 지혜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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