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적 없는 성적표 도입하는 美…교육개혁의 첫걸음”
[인터뷰] “성적 없는 성적표 도입하는 美…교육개혁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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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호 버지니아대학 교수(교육공학)
▲ 류태호 교수.(사진= 주현지 기자)

[한국대학신문 주현지 기자] 최근 미국은 현지 교육 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개혁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17년 미국 100대 사립고교에서 과목 성적을 표기하지 않는 성적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있다. 이와 관련해 《성적 없는 성적표》의 저자 류태호 버지니아대학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류태호 교수는 현대의 성적 줄 세우기식 교육은 근대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18세기 후반 영국 대학에서 수강생 수에 비례해 교수의 급여를 제공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하지만 당시 교수들은 구술시험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수강 인원을 늘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케임브리지대학의 윌리엄 패리시 교수가 필기시험을 통한 등급제를 도입했다. 등급을 매기니 평가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이전보다 많은 학생을 받을 수 있었다. 패리시를 부자로 만들어준 양적 평가에서 오늘날의 학점제와 100점 만점제가 유래한 것이다.”

이 같은 효율 중심의 평가제는 교육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패리시의 양적 평가는 정해진 시간에 더욱 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효율성에 치중한 교육은 시간이 흐르며 곪았고,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일방적인 가르침과 객관식 시험만으로는 학생들의 학습 수준을 자세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배웠으며 그들의 다양한 재능은 학점과 점수 아래 묻혀버렸다. 이 같은 근대의 교육 방식이 오늘날 공교육 시스템에 그대로 이어진 것은 더 큰 문제다.”

이에 미국에서는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개혁에 착수했다. “지난해 100대 미국 사립고교에서는 역량 중심 성적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미국에서는 상당한 연구비를 투입해 관련 시스템에 대해 연구 중이며 이 시스템은 2020년에 론칭될 예정이다. 역량 중심 성적표는 기존 성적표와 달리 과목명과 과목별 점수를 표기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갖고 있는 역량의 수준을 알려준다. 평가되는 역량으로는 △분석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복합적 의사소통 △리더십과 팀워크 △디지털‧양적 리터러시 △세계적 시각 △적응력‧진취성‧모험 정신 △진실성과 윤리적 의사 결정 △마음의 습관‧사고방식 등이 있다. 역량 중심 성적표를 보면 8가지 역량 중 어떤 역량이 뛰어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점수를 제거한 성적표의 도입은 역량 중심 교육을 기반으로 해 의미가 있다. “역량 중심 성적표는 역량 중심 교육을 전제한다. 역량 중심 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 개별 학생의 이해도에 따라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므로 낙오되는 학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 된다. 결과 위주에서 과정 위주로 평가를 진행하면서 학습의 현황을 심도 있게 파악해 숙련도를 향상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다. 학생이 학습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은 티칭(teaching)에서 코칭(coaching)으로 바뀐다. 현재 뉴질랜드, 핀란드 등에서도 성적표에서 점수를 제거하고 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이 같은 성적표를 도입한다면 머지않아 미국 대학에서의 평가 방식 역시 바뀔 것이라 본다.”

류 교수는 이 같은 미국의 교육 방향이 국내 제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미국의 역량 중심 성적표 도입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미국에서 왜 교육을 변화시키고자 하는가’다. 미국의 이런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한국의 교육 시스템 역시 역량 중심 교육으로 바꿔 나가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줄 세우기식 평가 제도보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개혁할 때다. 물론 교육의 변화는 긴 시간을 두고 많은 토론을 하고 숙고하면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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