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 이종희 교수

4학년들과 졸업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졸업 여행 가는데 교수님들도 같이 가요”라고 예의상 던진 말을 눈치 없는 교수들이 덥석 물고 만 것이다. 가기 직전까지 학과 교수들끼리 ‘우리가 함께 가도 되는 것이냐’며 아이들의 진정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논의는 논의일 뿐 여행 당일 날은 기대에 부푼 모범생들처럼 일찌감치 공항에 집결했다.

여행지는 라오스. 여행지 선택부터 여행 코스, 숙박에 관한 일체를 학생들에게 전임한 터라 어떤 숙소에서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그러나 도착 당일부터 ‘이번 여행이 심상치 않겠구나’라는 불길한 예감을 피할 수 없었다. 작은 비행기를 타고 흔들리며 늦은 시간 겨우 도착한 호텔에서는 여교수들의 방마다 진드기들이 나와 방을 바꾸기 몇 차례. 결국 포기하고 차라리 한 방에 모여 자자며 싱글 침대에 둘씩 누워 불편한 첫날밤을 보냈다. 그 뒤에도 윗방인지 아랫방인지 모를 그 어느 방의 변기 하수구가 역류해 내가 묵던 방까지 오물이 떠내려오고 그 오물로 인해 변기가 막히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사에 불과했다. 텔레비전 방송 덕분에 인기 여행지가 된 라오스는 다이빙·짚라인·버기카·카약 등 그야말로 액티비티의 천국이었다. 평소 물도 무서워하고 놀이기구는 쳐다보는 것만으로 오싹했던 나로서는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런 액티비티가 선택 관광이라는 걸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쉰 건 잠깐. 저가 패키지여행의 가이드는 선택 관광을 하는 학생 수가 예상보다 적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괘씸한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타지에서 가이드를 하는 이 분도 여행사의 기본급도 없이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니 오죽하면 이럴까 싶기도 하고, 거시적으로는 우리나라 관광 산업의 폐해를 책임지고자 하는 거국적 관점에서 대뜸 내가 신청을 하고야 말았다. 신청만 하고 액티비티를 안 할 수도 있겠지만 배포가 그리 큰 인물은 못 되고, ‘우리가 언제 또 이런 걸 해보겠느냐’는 옆 교수의 부추김에 무모한 도전을 하고 만 것이다. 럭셔리한 동남아의 휴양지를 꿈꿔왔던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라오스는 극한의 상황으로 나를 몰고 갔고, 이하 상황은 생략하겠다.

여기까지 서술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내가 라오스는 생각하기도 싫은 나라로 손사래를 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라오스는 내 마음에서 아궁이처럼 은근한 따뜻함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곳의 액티비티와 호텔은 에피소드로 남고, 그들의 조용하고 나긋한 말투와 선한 눈빛, 그리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농촌의 풍광이 내 가슴속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는 느낌이 불가사의하다.

라오스는 식민지의 역사도 길고 공산주의 국가라서 가기 전에 딱딱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고도 내게 딱히 와 닿지 않는 나라였다. <뉴욕타임스>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1위로 소개한 것이 과대광고 혹은 거품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라오스가 가진 매력이 깊게 여운을 남긴다.

라오스에는 없는 것이 많다. 일단 바다가 없고, 볼만한 문화유산도 없다. 거대한 쇼핑센터도 없으며, 화려한 레스토랑도 없다. 그러나 ‘1달러’를 요구하며 매달리는 아이들도 없다.

그곳에는 한가로운 농가에서 멱 감는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옥수수를 먹는 동네 아낙들, 서늘한 그늘 밑 평상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는 사내들과 마당에서 함께 뒤엉켜 각자의 먹이를 찾는 소와 개와 닭과 오리들이 있었다. 더운 한낮에 여백을 만들어주는 바람이 가만가만 불어오면 흑백사진의 풍광처럼 시간은 느리게 가고 마음은 조용해진다. 그리고 마치 투명한 거울처럼 나의 일상이 고스란히 비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없는 것이 많은 나라 라오스에는 우리가 갖지 못한, 혹은 잃어버린 소중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듯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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