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민 김포대학교 NCS 지원센터장

▲ 정철민 NCS 지원센터장

지난 12일로 모든 전문대학의 대학역량 진단평가 보고서 작성은 마무리 됐다. 1차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된 대학들은 6월 말에 이미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했고, 2차 평가를 받게 된 대학들도 최종 보고서 제출을 마쳤다.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1년여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학 구성원들의 역량을 총결집시키려 애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지나치게 평가에 천착한 나머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했던 적은 없는가라는 걱정이 든다. 이런 마음은 전문대학의 교양교육을 생각할 때 더욱 커진다. 교양교육에 대한 평가 지표가 무엇이든지 간에, 전문대학의 교양교육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볼 영역이고 또 그럴 시점이 됐다고 여겨진다. 지난 정부 이후 전문대학의 평가는 NCS 기반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직업기초능력을 교양교육 과정에 포함시켜 다룸으로써 다소 성급하게 교양교육의 변화를 야기하고 말았다. 그 결과 전문대학생들을 위한 교양교육은 대부분 직업기초능력을 중심으로 한 교과목으로 제한되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대학의 교양교육은 두 가지 반성적 검토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교양교육 본연의 의미, 즉 ‘밭을 가는 것(cultivating)’처럼 인간 마음의 다양한 측면을 갈고 닦아 인간다운 삶의 영위에 기여하는 교육으로의 회복이다. 교양교육은 대학마다 다른 건학이념이나 특징을 반영한 다양한 과정을 포함할 수 있다. 굳이 문사철로 교양교육의 영역을 특징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직업기초능력의 함양이 교양교육과 동일시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대학의 교양교육은 현실적인 제한을 핑계로 그 영역이 직업기초능력으로만 국한되는 데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양교육의 다양성이 획일화된 틀로 포착되기 어렵다는 점은 다양성을 증대하려는 노력에 대한 강력한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교양교육도 교육의 한 측면인 이상 학생들의 ‘잘 삶(well-being)’과 관련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의 목적이 잘사는 것과 관련돼 있다면, 교육은 적어도 실제 삶을 영위하는 맥락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문대학의 교양교육은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학생들의 삶의 맥락이 요구하는 소양과 자질을 포함하고 있는가? 예컨대, 도덕성이나 윤리 의식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민성이나 시민교육을 다루고 있는가?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이나 전공 수업의 특수성 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전문대학 교양교육의 목적이나 내용에 대한 도전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교양교육이 학생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직간접으로 관련되기를 원한다면, 보다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교양 교과목의 개발 및 운영에 도전해볼 수 있어야 한다.

R. Barnett이 현대 사회를 불확실성, 예측불가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초복잡성 사회(a supercomplex society)’로 설명한 이후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대학은 하나의 생명체로 비유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문대학 또한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사회 변화에 직면해 변화의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다만 그 노력이 평가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교양교육에 대한 논의만 하더라도, 앞서 제기한 두 가지 외에도 평가 지표 그 이상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대학은 지난 10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율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가며 전문적인 기관으로 성장해왔다. 말하자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의 발휘야말로 대학을 다른 교육 기관과 구분하는 특징이며,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인 셈이다. 대학의 교양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교양교육에 대한 고민은 그 누구보다 대학 구성원들 스스로의 몫이 돼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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