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연구원

대학원생 A는 본인이 설계한 실험을 위해 연구장비를 구입하고자 했으나, 고가의 장비라 교수님이 허가해주지 않았다. 이에 한 달여간 국가에서 운영하는 ZEUS 시스템을 통해 유사한 장비를 운용하는 기관과 연구실을 찾아봤고 사용을 위해 여러모로 알아봤으나, 장비가 정상적으로 운용되지 않거나, 너무 먼 거리에 있어 실제로 활용하기 어렵거나, 해당 실험을 위해 세팅을 바꿔주기는 어렵다며 거절을 당했다.

교수님을 다시 설득하기 위해 한 달여간 실험에 필요한 장비를 제조하는 여러 기업의 스펙과 가격을 열심히 비교·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업체와 협의를 진행해 가격·성능·A/S 측면에서 최적의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았다. 이를 근거로 교수님으로부터 간신히 장비 구입 허가를 받고 학과 사무실에 장비 구입 신청을 요청했다. 하지만 3000만원이 넘는 장비였기 때문에 대학 구매팀을 통해 2주간 공고를 내고 입찰경쟁을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했다. 첫 공고를 2주간 냈으나 하나의 업체만 참여해 유찰됐다. 재공고를 거쳐 업체가 선정됐으나, 선정된 업체가 검토한 기기와 다른 형태여서 해당 기기로 설계한 실험이 가능한지 검토하는 데 또 1~2주가 소요됐다. 하지만 검토 결과 어렵다는 결론이 나와 구매팀에 재공고를 요청했고, 선정까지 또 2~3주가 흘렀다. 다행히 이번에는 사전에 견적을 받았던 업체가 선정돼 바로 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나 해외에서 주문 생산방식으로만 제작하는 장비라 계약 이후 배송·설치까지 3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시작한 연구였지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해당 장비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실험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상의 이야기가 대학 연구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장비 구입에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6개월 이상. 이 또한 연구비가 충분한 연구실의 이야기다. 연구 장비를 할부로 구입한다거나 중고 연구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그 절차가 더 복잡하고 까다롭거나 아예 불가하다. 신진 연구자에게 있어서도 고가의 실험장비 구입은 꿈같은 이야기다. 받을 수 있는 연구비 규모와 연구비 이월이 어려운 현재 시스템을 고려해보면.

연구 장비 구입만이 아니다. 알루미늄 호일, 비닐장갑 등의 실험 소모품을 더 싸게 구입하고자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게 되면 해당 물품의 연구 관련성을 사유서로 작성해야 한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은 10%가량의 수수료를 지급하더라도 연구행정의 편의를 위해 해당 물품들을 연구물품 공급업체를 통해 구입한다. 연구비의 항목 변경에도 사유서가 필요하며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변경된 항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물품 구입 시에는 매번 견적서와 영수증, 세금계산서를 받아 시스템에 업로드하거나 보관해야 한다. 연구비로 출장을 다녀온 경우에는 교통 증빙자료나 출장지에서 산 껌 영수증이라도 첨부해야만 한다.

연구행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깐깐해진 데에는 과거 일부 부정한 연구자들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모든 연구자들을 잠재적인 위법행위자라 가정해 연구행정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의문이다. 행정이란 원칙과 당사자들의 편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시스템인데 말이다.

정부 정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구기관 조직 내의 문화도 한몫 거들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 행정조직은 연구자들이 연구를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대로 연구자들이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게끔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앞에서 언급한 연구 현장에서 발생되고 있는 연구 행정으로 인한 비효율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다행히 연구제도혁신방안 등에서 일부 내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부디 연구 행정이 연구자들의 관리·감독이 아닌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선진적인 형태로 변화해 나가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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