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수영장에서 겨우 기초를 익히고 난 후 바다에 나가 저 멀리 해수욕장 경계지점까지 도전했던 때를 기억한다. 멈춰서면 발이 닿는 수영장이 아니라 밑이 보이지 않는 짙푸른 바다를 마주한 그 순간, 장자가 수영의 달인을 통해 전하는 비법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나온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안해진 것이 옛 삶이고, 물에서 자라서 물에 편안해진 것이 지금의 삶이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운명이다.” 이 말은 바다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행정이 대학에서 마주해야 하는 대상은 익숙한 육지에서 걷다가 바다로 나아가 수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낯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행정인은 그 대상의 다름에 대해 간과하고 육지의 옛 삶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행정의 방식으로 대학을 대한다. 이 점에 대해 장자의 바닷새 이야기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행정을 한다는 것은 항상 어떤 대상이 존재하고, 그 대상은 각각의 고유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행정은 각각의 특수성보다는 전체적 관점에서 보편화하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행정과 그 대상이 대립하게 되는 경우를 보면 대체로 행정의 보편성과 그 대상의 특수성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구조다. 여기에서 행정이 그 대상의 특수성보다는 행정의 보편성만을 고집한다면 그 대상은 자칫 바닷새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행정이 무조건 보편성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기준 없이 행정을 한다는 것은 수영의 기초지식 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따라서 각각의 특수성에서 전체적인 보편성을 발견하고 이를 고도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고 필수 요소다. 그러한 후에 행정은 이 보편성을 준거로 삼아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행정이 그 대상과 어떻게 어우러지고 소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학문의 삶에 익숙한 어떤 대상이 행정의 규칙을 이해하고 그 절차대로 실행하는 것은 학문을 하는 본업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행정인에게는 익숙하고 편안한 일이다. 이것은 육지와 바다의 삶만큼이나 다른 영역일 수 있다. 어떤 목적을 위한 행정 절차 하나하나에는 모두 이러한 차이가 존재한다. 대학은 행정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위한 장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어느 쪽이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영역으로 나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학문이 낯선 행정의 영역으로 나와야 한다면 그만큼 본질적인 곳에 에너지를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보다는 대학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행정이 먼저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행정과 학문이 만나는 경계지점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이 대립하지 않고 융화돼 행정은 대학에서 없는 듯 존재하게 된다. 이쯤 되면 수영의 달인이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운명이다’라고 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 바닷가에서 수영의 달인을 생각하며 행정의 달인을 기다려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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