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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大인] "최선을 다한다는 건 목숨을 건다는 의미"김미곤(한국도로공사 산악팀장ㆍ블랙야크익스트림)
허지은 기자  |  jeh@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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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8  10: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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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미곤 대장.(사진=본인 제공)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8000m급. 최근 그 14개의 봉우리를 모두 오르는 데 성공한 산악인 김미곤 대장(한국도로공사 산악팀장ㆍ블랙야크익스트림)을 만났다.

7월 9일 오전 8시 21분, 14좌 완등 여정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오르며 그가 세운 기록은 국내에서 7번째, 세계에서는 41번째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이었다. 그에게 완등 소감을 묻자 아직 얼떨떨해하고 있는 듯 답이 돌아왔다.

“정상에 설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우리를 받아줄지 안 받아 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인 것이죠. 특히 원정대에는 대원 수가 많았고 처음 히말라야를 오르는 대원들도 많아서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안전한 등반을 위해 작년 12월부터 꾸준히 모여 합숙훈련을 하는 등 오래 준비했습니다. 30kg 정도의 짐을 메고 밤새 걷는 훈련도 했죠.”

이번 등반 일정은 6월 4일부터 시작됐지만, 사실 작년 12월부터 그는 이미 낭가파르바트를 오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오른 낭가파르바트 정상에서 김 대장은 모교의 이름을 드높였다. 산악인 김미곤으로서의 시작이 바로 서영대학교(재학 당시 서강정보대학)였기 때문이다.

   
▲ 김미곤 대장이 낭가파르밧 등정 성공 후 서영대학교 로고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서영대학교)

“대학에 입학해 산악부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전문적인 등반 기술을 배웠죠. 산악부 활동을 하다보니 이왕이면 히말라야에 올라 만년설을 밟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히말라야 8000m급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1994년에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으니 벌써 산을 오른 지 25년째네요. 만약 제가 산을 다니지 않았다면 어디서 뭘 하고 살았을까 싶습니다.”

취미로 시작해 전문 산악인이 된 김 대장은 지금도 산악부 후배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후배들을 위해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등반을 갈 때 동행을 원하는 후배가 있다면 경비와 장비 일체를 전부 지원하곤 한다. 대원 한 명당 경비만 1000만원에 장비 일체를 꾸리는 데는 2000만~3000만원이 들어가니 꽤 큰 액수다. 이렇게 사비를 털어가며 후배들을 산에 데려가는 건 자신이 산에 다니며 좋았던 것을 후배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산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르다보면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각국의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이번에 김 대장이 이끈 ‘2018 낭가파르바트 아시아 평화원정대’는 한국대원뿐 아니라 대만 산악인들도 포함됐다. 김 대장은 대만 외에도 중국 산악인들과도 교류하고 있다.

“대만 산악인들과의 인연은 2013년도 파키스탄의 가셔브룸에서 시작됐어요. 대만 산악인 2명이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한 명이 다쳐 구조요청을 보냈었죠. 다른 유럽 팀들은 위험하니까 요청에 응하지 않았는데, 우리 한국팀에서 가서 구조해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이후 그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히말라야 등반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 2015년부터 국내에서 함께 훈련하고 등반도 했죠. 중국 산악인들도 함께 훈련하고 싶다고 해서 훈련을 같이 하다가 올 봄에 네팔 다울라기리를 함께 올랐습니다. 중국이나 대만은 히말라야를 다닌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겨울이면 한국에 와서 함께 훈련하고 교육을 받습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인데 늘 생각대로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2010년, 마나슬루에서 두 대원을 잃었을 때다. 김 대장은 당시를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회고했다. 살아돌아온 대원들 중에도 열 손을 동상으로 다 잃은 경우가 있었고, 그 역시 발가락 3개를 한 마디씩 잘라내야 했다. 그러나 신체를 잃은 ‘불편’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대원을 잃고 왔다는 죄책감이었다. 이후 그의 등반 제1원칙은 '안전'이 됐다.

“대원을 잃은 뒤부터는 아예 정상을 가지 않으면 않았지,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등반을 감행하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사고의 위험이 있으면 무조건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번에 낭가파르바트를 오르기 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는데, 요즘 보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 것 같습니다. 제게 최선을 다했다는 건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입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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