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 한국창직협회장

‘고용참사’ ‘신규취업자 10만 명 붕괴’ 우리 사회의 고용 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실업 해소, 일자리 창출이 지상과제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취업 위주 교육을 실시해온 대학에서 창업 ·창직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취업 교육에 집중돼있는 현행 대학교육에서 창업·창직 교육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고등(직업)교육 차원에서의 '창업·창직·창의·창작 (일명 4創)'의 내실화 및 활성화를 위해 창업·창직 교육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상상력(想像力)과 창의력(創意力)이 미래 경쟁력이다.
②창업 생태계 고도화를 위한 상생의 시대
③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창업교육
④창직이 미래다, 해외사례로 본 창직교육의 방향
⑤해외사례를 통해 본 창의인재양성 탐구
⑥트렌드와 브랜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 – 방탄소년단의 군비확장을 위해
⑦로테크와 하이콘셉트를 위한 전문대학의 융합교육
⑧대학창업교육과 지역경제 연계방안
⑨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창업교육 방향과 전략
⑩전문대학 창업(교육)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 이정원 한국창직협회장

세상이 변하면 직업도 변한다. 산업혁명은 세상의 변화속도를 더욱 가파르게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만큼 직업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경제성장의 주축이었던 기존 일자리가 점차 자동화돼 가고 있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함으로써 급속도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됨에 따라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졸업 후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갈수록 학생모집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졸업 후 진로가  꽉 막힌 학생들의 출구전략까지 고민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있다.

그런데 직업세계를 통찰하다 보면 기술의 발전이나 사회 변화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직업이 소멸되기도 하지만 바뀌는 산업구조나 사회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직업도 출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인 가구가 확대되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선호도가 급증함에 따라 반려동물행동심리상담사, 펫영양사, 펫시터, 도그워커 등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신직업이 쏟아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변하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AR, VR 등의 첨단기술 관련 신직업은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통찰을 통해 지속가능한 새로운 직업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활동을 ‘창직(創職, Job Creation)’이라고 한다. 턱없이 일자리가 부족한 노동시장에서 미래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최근 ‘창직’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창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주도의 창직교육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유일하게 고용노동부에서 2011년 창조캠퍼스의 창직과정 사업이 시작돼 2013년부터 청년취업아카데미의 창직과정을 통해 현재까지 매년 일부 대학에서 연간 1000명을 대상으로 창직 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단기 사업의 특성상 아이디어에 대한 구체화 과정이 없어 단순 스펙쌓기용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이에 따라 해외 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는 창직교육의 사례를 통해 향후 대학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014년 개교 4년 만에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보다 들어가기 힘든 대학이 있다. 2017년 입학 경쟁률이 무려 97 대 1이다. 210명 모집에 2만427명이 지원했을 정도다. 바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미네르바 스쿨이다. 이 대학은 캠퍼스 없이 온라인에서만 수업이 이뤄진다. 입학생은 전원 기숙사생활을 하며 3~6개월마다 전 세계 7개의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경제를 익힌다. ‘이 시대에 필요한 글로벌 감각을 익히고,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직업에 어울리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 미네르바 스쿨의 설립취지다. 사회과학, 비즈니스, 예술인문학 등의 전공과목과 ‘사회과학과 뇌신경과학’처럼 융합과목을 통해 10~20년 후의 미래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미래적응역량(future-proof)’을 가르치고, 세상의 어떠한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변화적응력’을 키울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학생 스스로 기존의 지식이나 학문보다는 변화된 시대에 맞게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의 문제를 찾아내 풀어나가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수업방식은 월~목요일까지 수업과 과제 중심으로 진행하고, 주말은 그 도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경험적 학습으로 진행한다. 즉, 현지의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와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며,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수업시간에 접한 개념을 응용해 풀어가는 방식이다. 이처럼 대학이 민·관·학 협력모델을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기존에 없던 신직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 사진=문화체육관광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2002년부터 기존의 69개 학과를 통폐합해 16개의 단과대를 신설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학제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단순한 학과융합이 아닌 국제사회나 시민사회에 앞으로 대두될 주요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 조치다. 예를 들어 천문학과, 지구과학과, 천체물리학과 등 기존 학과를 통합해 지구·우주탐사 단과대학을 만들어 새롭게 열릴 우주탐사시대의 전문인을 사전에 양성하는 방식이다. 또 학생이 능동적으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으로 바꿨다. 포화상태에 놓여있는 기존 직업이 아닌 미래사회를 주도해갈 신직업인을 양성하는 대표적인 창직교육 사례다. 이로 인해 대학의 위상 제고와 취업률 상승은 물론 10년간 졸업생 증가율이 71% 상승했고 온라인 등록 학생이 4000명에서 2만6000명 이상으로 급증함으로써 미 공립대학 중 최대 규모로 성장하며,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에 선정됐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지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거나 과학·공학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수 있는 연구인 변혁적 연구(transformative research)를 장려하는 미 국립과학재단(NSF) 등의 정부지원과 대학 내 이해관계자들 간의 조정과 협의를 이끌어낸 크로 총장의 리더십이 있었다.

해외 대학의 사례를 참고해 앞으로 국내 대학에서 창직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 번째는 기존의 틀에 박혀있던 학과 시스템을 변화된 시대에 맞게 과감하게 개편해야 한다. 세상이 급변해 직무가 변하고 직업이 바뀌고 있는데, 대학에서 다루는 지식과 학문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급변하는 직업세계의 특성과 개개인의 재능을 고려하지 않고 제조산업 기반의 1차 산업혁명에 적용된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꼴이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대학의 대대적인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만약 큰 틀의 변화 없이 보여주기식 처방만을 고집한다면 공멸할 시기만 재촉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관심 분야에서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면서 자신의 미래 일자리를 키워갈 수 있는 상시적인 환경, 즉 창직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 내에서 창직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창직지원센터’나 ‘창직보육센터’ 등의 조성이 절실하다. 이 기구는 대학생활 동안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사회문제 등을 찾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창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다. 또 민·관·학 협력모델을 구축해 지역문제 해결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거점 역할까지 도맡아야 한다. 그리고 창직에 대한 올바른 방향 설정과 역량 강화를 위해 전문적으로 코칭하고 운영할 수 있는 창직컨설턴트를 센터 내에 배치해 언제 어디서든 창직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대학생의 진로지도 및 취업지원에 있어 혁신적인 미래를 안내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정부의 거시적인 창직에 대한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청년취업아카데미의 1년 단위 창직과정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대학 신입생부터 직업세계의 통찰을 통해 창직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해가는 창직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고학년에 적성과 전공을 활용해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직무개발과 창직역량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는 심화단계의 창직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창직에 대한 독립적인 지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창업 지원책은 기업의 설립과 성장을 위한 기반 마련 목적이고, 창직 지원책은 새로운 직무 및 직업 개발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 취업이나 창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창업과는 다른 별도의 창직 육성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창직선도대학’ 지정을 통한 집중적인 창직 지원도 적극 고려할 사안이다.

이제 대학은 무조건 변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학령인구 감소 등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변화의 시대와 맞닥뜨리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골탈태 이상의 혁신이 필요하다. 대학마다 특성화된 창직교육이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고 미래를 대비할 최선의 선택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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