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리 동서울대학교 교양교육센터장

취업자 증가 폭이 7만 명대로 떨어져 일자리 창출을 최대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의 국정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가 추경까지 지원하며 청년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쏟고 있지만 개선되기는커녕 뒷걸음을 치는 형국이다. 보다 근원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실업대란의 해소는 임기응변적이고 단발적인 정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정책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고용의 90%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더 따뜻한 정책적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졸업생의 82.2%가 중소기업에 취업하고 있는 전문대학을 주목해야 한다. 중소기업 일자리 문제는 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중소기업과 전문대학의 상생을 위한 전문대학의 산학교육혁신에 대해 총 9회에 걸쳐 연재한다.

1. 4차 산업혁명 시대의 親중소기업인 양성을 위한 전문대학 교육혁신
2. 전문대학 기능 극대화… 평생・직업교육의 거점기관으로 육성해야
3. 4차 산업혁명 시대, 직업교육훈련으로 나만의 스펙을 .....
4. 지역산업별 중소기업의 직무역량, 전문대학은 키우고 있는가?
5. 전문대학 산학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
6. 생각하는 기술인 양성을 위한 전문대학 교육은?
7. 고교-전문대학 간 직업교육과정 연계운영을 통한 직업교육강화
8. 사람이 필요한 중소기업, 그 사람을 키우는 대학, 전문대학
9. 전문가 간담회

▲ 정주리 교양교육센터장

한참 전의 일이다. 공부도 참 열심히 하고 성실하고 예의바른 학생이 있었다. 졸업 시기가 돼 그 학생을 선망하는 기업에 우선적으로 추천했다. 그런데 학생이 면접을 보고 와서는 합격하지 못할 것 같다며 울먹였다. “지금까지 강의실에서 열심히 들었는데 막상 면접관이 묻는 질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긴장해서 그런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지식을 열심히 머릿속에 넣기만 했고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일은 학생의 반성만이 아니라 교수에게도 반성을 하게 한 사건이었다.

2018년 6월, 교정은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분주했다. 1장짜리 시험지에는 시험문제가 빼곡하게 인쇄돼있다. 신기하게도 시험지는 학생들의 답안 작성내용보다 문제 글자 수가 더 많다. 문제는 길고 답은 짧다. 선다형이거나 단답형의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험 시간이 시작된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을 마친다. 더러 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이라도 고민의 순간은 짧다. 여러 답지 중에 하나를 체크하고는 시험지를 제출한다. 교과목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론 과목이거나 교양과목인 경우 1시간을 넘기는 시험이 별로 없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고 나면 교수는 담당 교과목의 수강생 개개인의 평가 결과서를 입력해야 한다. 단순히 평가결과 점수만을 기입하는 것이 아니다. 평가 기준과 평가 문항의 정합성을 대응시켜야 하고 학생 개인이 받은 점수에 따른 성취도 수준도 마련해야 한다. 객관식 선다형은 맞고 틀리는 것만 판정하는 평가 방식이므로 따로 평가 수준(루브릭)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논술형 평가나 포트폴리오 평가, 구술 프레젠테이션 평가 등등의 다양한 평가를 선택하면 그에 따라 증빙해야 하는 서류가 많이 붙는다. 교수들이 다양한 평가방법보다 단순한 평가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학에서 선다형 또는 단답형 문제를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관련 있다. 학생들 이야기가 나오면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요즘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3줄 이상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학생의 학력저하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까지 된 현실에서 3줄 불가론은 대학 현장에서 실증적인 힘을 얻고 있다. 그러다보니 쉽게 가르치고 쉽게 평가한다.

이런 현실과는 달리 요즘 한국사회는 주입식 교육을 개선하자는 교육혁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단순한 암기 지식을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교육위기론이 팽배하다. 현재의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육방법이 아니라 평가방법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방법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제도가 국제 바칼로레아(이하 IB, International Baccaluareate)교육이다. IB는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패턴을 익히던 주입식 교육방법에서 토의와 논술을 거쳐 복합적인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풀도록 가르치며, 학습과정에 대한 평가는 과목별 에세이나 논술문로 평가하는 것이다. IB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와 이에 필요한 핵심역량과 인재상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현재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일본의 교육혁신에서 충격을 받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강한 일본을 위해서는 경제와 교육 재건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2013년 ‘교육 재건 실행위원회’를 만들고 2018년 올해까지 200개 학교에서 IB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했다. 이는 국내에서 IB교육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다.

제주시 교육청을 비롯해 11개 교육청 중 9개 교육청에서 IB교육 도입을 검토하고 있고, 포스코에서 운영하는 포스코교육재단 산하의 10개 초·중·고교에 IB 교육과정 도입이 추진된다. IB교육이 향후 공교육에 안착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생각하는 인재를 육양성하려는 의지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서 전문대학 교육과 전문대학 학생들은 비켜나가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동안 전문대학은 국가가 정한 직무별 표준이라는 프레임에서 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전력을 추구하다 보니 산업 변화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만드는 기동력이 떨어져있다. 기업이든 교육현장이든 프레임이 강하면 변화도 어려운 법이다. 전문대학에는 약 5년 동안 위로부터 부과된 교육 프레임 족쇄에 묶여있었다. 이 같은 교육 프레임은 교육내용, 교육방법, 평가방법 등 전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영향은 교육 일선에 선 교수의 창의적 교육역량을 시들게 했다는 점이다. 교육현장에 서보지 않고, 교육의 일선에서 하루하루를 고민하지 않고는 누구도 현장의 현실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프레임을 만들었다.

이제는 전문대학이 고착화될 뻔한 프레임에 대해 날선 시각으로 반성하고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지 않도록 창의적인 교육과정, 유연한 교육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그 교육을 받는 전문대학교 학생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외되지 않는 시민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금의 직업 중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질지 대학의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여전히 살아가야 할 젊은 학생들에게 교육이 무엇을 경험하게 해야 할지는 대학이 선택해야 한다. 전문대학 학생들은 일반대학 학생들보다 이른 나이에 사회로 나간다. 배움의 양도, 배움의 시간도 짧다. 그렇다고 기술만 가르치는 기능 교육만 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기술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초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사회인 기초역량은 누구라도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발휘돼야 할 역량이다. 일에 주체성을 갖고 몰입할 수 있는 역량,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역량, 문제의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분명히 하고 계획할 수 있는 역량, 목적과 과제를 명확히 해 실행할 수 있는 역량,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 자신의 의견을 글과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역량, 상대의 의견을 정중히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역량,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과 사물의 관계성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 사회의 규칙이나 타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역량 등이다.

이를 위한 실천적인 방안으로 전문대학 공통의 교육과정 개발을 우선적으로 추천할 수 있다. 생각하는 기술인이라는 명제는 어느 한 대학만의 목표가 아니므로 지역별로, 지역 내 대학 그룹별로 제휴해 공동으로 교육과정의 방향을 협의하고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지역 내 대학들이 참여하고 개발과정을 공동으로 지원한다면 개별 대학이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생각을 체험할 수 있도록 모든 강의실에서 질문과 평가방법을 바꿔야 한다. 생각은 체험의 과정을 통한 습관의 일종이다. 단순한 생각도 있고 복잡하고 심층적인 생각도 있다. 교육과정에 어떤 질문을 하는지, 어떤 평가를 하는지는 생각의 유형을 체득하는 직접적인 학습방법이다. “오늘 어디까지 배웠지?” 를 질문하면 교수를 잘 따르는 학생은 친절하게 “~까지 배웠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보다 조금 나은 질문, “회사의 업무를 보고하기 위해 작성되는 문서는 뭐지?” 또는 “경청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지?” 라고 질문하면 몇 초간 고민한다. 그러나 그 이상 고민하지는 않는다. 답을 알거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고민이 필요 없는 이러한 유형의 단순 질문을 계속 하면 학생들은 심층적 사고를 배울 기회가 없다. 그럼 이번에는 “내게 좀 더 나은 의사소통능력이 있었다면 그 일은 다르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질문하면 강의실은 웅성거린다. 그런 일은 학생들 누구에게나 있고 모든 일이 답이 될 수 있으므로 학생들 각자 그 대답을 어떻게 구성할까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 한 단계 더 높은 질문을 만들어보자. “《잠깐 애담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나요》를 읽고 나라면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편에 설까? 아니면 글쓴이의 편에 설까?” 이 정도의 질문이 되면 적어도 10분 이상은 생각한다. 어느 편에 선다는 것은 그 편에 서야 할 이유를 대야 하므로 시간이 걸린다. 그 대답을 만드는 과정 중에 일상의 경험들, 이전의 지식, 심지어는 영화나 소설이야기도 끌어당기면서 답을 구성한다. 창의력이 두 사물의 관계가 먼 것끼리 연관성을 찾는 능력이라면 강의 시간마다 이러한 질문을 경험하게 한다면 생각은 습관이 되고 이런 습관은 심층적 사고와 창의력을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생각하는 기술인을 양성할 수 있는 문제가 한 편의 글로 마무리될 수는 없지만 우선적으로 교육 본질에 대한 주체적 의식과 공감대, 그리고 강의실에서의 작은 질문 실천에서 키워진다는 믿음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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