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아 한양대 한양행복드림상담센터 책임연구원

여름날 더위가 유난히 길었다. 숨이 막힐 듯 헉헉대는 공기 속에서 몰려오는 짜증과 피로감으로 기분은 처진다. 날씨만으로도 충분히 권태나 무기력에 빠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더위를 뚫고도 교내 상담센터를 찾는 대학생들이 있다. 더위에 지쳐 쉼을 가지는 것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사는 것이 과연 죽는 것보다 나은가라는 큰 고민 위에 서 있는 학생들이 많다.

최근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고통을 주는 자해행동으로 이를 대처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자해행동은 고통으로 고통을 견디기 위한 비자살적 자해와 최종에는 죽음을 선택하는 자살시도로 나뉜다. SNS에서는 2만 건이 넘는 자해 인증샷을 만날 수 있고, 언론에서는 연일 자살사건에 대한 무분별한 보도가 이어진다. 죽음을 대처방법으로 선택하는 어둠의 그림자는 우리의 삶에 너무도 가까이에 산재해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라는 저서에서 자살에는 수많은 동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볼 때 가장 표면적인 이유가 가장 유력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자살하는 이가 깊이 반성한 끝에 시도하는 일은 드물며 거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위기의 발단이 된다고 봤다. 즉, 자살을 한 바로 그날 한 명의 친구가 절망에 빠진 그에게 무관심한 어조로 대꾸한 적은 없었는지 알아봐야 하며,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그때까지 유예 상태에 있던 모든 원한과 모든 권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존의 길로 누군가를 이끄는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 모른다.

또 대학생들에게 자살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데 주요한 생존요인은 무엇인지 묻는 연구에서는 자신이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목표를 정하고 실현하는 것, 자신이 성취하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 자신과 관계돼있는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고 싶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 살아있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 등이 중요 생존요인으로 뽑혔다.

주변을 살펴보자. 평소보다 다르게 무언가 하기를 귀찮아하고 집중을 잘 못하는 친구가 있는가. 식욕·수면·말수가 줄었고, 세상에 홀로 있는 듯 외롭고 슬퍼 보이며, 갑자기 울거나 두렵다고 말하고, 자꾸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능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하는가. 삶에 대한 현재 태도가 낙담해있고, 자살에 대한 생각과 욕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러한 학생을 만나면 꼭 대학상담센터를 방문하라고 권하자. 만약 스스로 상담센터를 방문할 힘도 나지 않는 것 같다면, 대신 신청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해 볼 수도 있다. 또 대학 공간 자체가 자살예방 게이트키퍼가 돼 학생들의 자살위험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그것은 그의 죽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와 관계된 모든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유가족이 생겨난다. 또다시 유가족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관계의 힘이 있다. 위험의 순간에서 생존을 선택하는 많은 이유가 고통 속에 있는 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애정이다. 일상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하나씩 올려가며 자신이 가진 모습 그대로 삶을 살 수 있도록 아주 작은 관계망의 누구에게나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의 자살예방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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