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근 서울연구원 산업공학박사

청년고용이 국가적 문제가 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전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얘기한 지도 3년 지났고, 그 사이 대통령도, 국회 원내 1당도, 주요 지방자치단체장도 모두 바뀌었지만 청년고용 문제는 큰 진척이 없는 듯하다. “가능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할 때”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수 있는 정부 정책도 있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지난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연구개발(R&D) 주요 11개 부처가 정부 지원 기업 R&D 자금에 비례해 청년 신규채용 유도 정책을 발표한 이후 과기정통부 소관 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사업 처리규정(과학기술정보통신부훈령 제30호), 산업기술혁신사업 공통 운영요령(산업통상자원부고시 제2018-90호) 등이 개정됐다. 기업이 정부 R&D과제를 수행하고자 할 경우 정부출연금 5억원당 청년 1명씩 신규채용 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최근 연구관리 전문기관들(한국연구재단,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은 실제로 청년 신규채용 의무화를 조건으로 과제를 공고하고 있다.

아무리 청년고용 문제가 심각하다지만 과연 정부 R&D과제에 이러한 강제 규정을 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정부 R&D과제의 청년 신규채용 의무화를 논하기 전에, R&D와 일자리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해 고민해보자. 잠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R&D는 노동력 투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조립공장 노동자를 대신하는 조립로봇, 고속도로 요금징수원을 대신하는 하이패스, 은행창구 사무원을 대신하는 인터넷뱅킹과 ATM, 식당 점원을 대신하는 자동주문시스템 등 대부분의 R&D는 사람이 하는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돼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러한 R&D의 노동 저감 성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세금으로 R&D를 지원하는 이유는, 그러한 기술개발이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효율적으로 만들고 성장동력을 마련해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정부 R&D과제의 청년 신규채용 의무화 규정으로 돌아오면, 정부 R&D과제는 당연하게도 해당 연구를 가장 잘 수행할 연구자가 하는 것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자원배분 차원에서도 올바른 일이다. 정부 R&D과제를 건설사업처럼 정해진 규격으로 발주하지 않고 연구자가 직접 희망하는 연구내용을 제시하는 이유는, 정부 R&D과제를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능력이 같을 수 없고 연구자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부는 연구 실적, 연구 환경 등 연구 실력이라는 변수 외에 청년 신규채용이라는 연구 실력과 동떨어진 규정을 만들어, 연구 실력은 있으나 청년 신규채용 여력은 없는 기업의 정부 R&D과제 참여를 원천 봉쇄하고 말았다. 수년 후 황금알을 기대하며 세금을 투자하는 R&D사업과 맞지 않는 너무나 근시안적인 규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청년고용 문제를 해소하고자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응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목마르다고 오염된 물을 마시면 안 되듯이 정책 시행 전에 궁극적으로 올바른 정책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박노해 시인의 ‘경계’라는 시에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미래를 잡아먹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래에 도움이 되고 현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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